[醫-政 접점은 없나]약사법 재개정-구속자 석방이 쟁점

  • 입력 2000년 8월 11일 18시 40분


“화나고 답답하다. 이렇게 가도 되는 건지…. 여러분 얘기를 들으러 왔다.”

최선정(崔善政)보건복지부장관은 11일 기자실을 찾아와 정부의 보건의료 발전대책을 의료계가 거부한 데 대한 심정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로 마련한 대책이고 종전과 달리 불법 폐업에 강경하고 엄정하게 대처하겠다는 얘기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는 등 의료계를 배려했는데 전공의협의회와 의권쟁취투쟁위원회는 물론 의대교수들까지 한목소리로 거부한 게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시민은 “의료계가 국민건강권과 의권을 지키기 위해 투쟁한다고 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요구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의료계 요구가 항상 변하고 그나마 의사협회 병원협회 전공의 전임의 의대교수 등 입장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는 건 의쟁투와 전공의협의회 관계자들도 인정하는 사실이고, 이 점이 의료계 2차 재폐업 사태의 해결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인이다.

의약분업 시행을 앞둔 6월20일 의료계는 집단폐업을 시작하며 약사법 개정(일반약 낱알판매를 허용하는 39조2항 삭제)과 의보수가 처방료 조제료 현실화를 강력히 요구했었다.

의협 상임이사들은 “10가지 요구사항 중 이 두가지만 명확히 해결하면 폐업을 즉각 철회하겠다”고 정부와 정치권 관계자들에게 공언했었다.

이에 따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이회창(李會昌)총재가 6월24일 영수회담을 열고 임시국회에서 약사법 개정을 약속했으며 실제로 여야는 국회법 통과문제로 정쟁을 벌이는 가운데서도 지난달 말 개정 약사법을 통과시켰다. 의보수가와 처방료 조제료도 대폭 인상됐다.

의쟁투 전공의비대위 의대교수협이 10, 11일에 내놓은 성명서를 보면 의료계 요구의 핵심은 여전히 약사법 개정이다. 여기에는 구속자 석방과 수배자 해제라는 단서가 붙었다.

의쟁투 광고는 △약사의 불법진료와 임의조제를 근절하기 위해 전국적 분업감시단을 즉각 발족하고 △약사가 환자의 조제요구를 거부할 수 없는 법을 확실히 만들며 △분업소요 비용과 재원조달 방안을 국민 동의를 거쳐 시행하라는 현실성이 적은 내용을 담고 있다.

최근 의료계 인터넷 사이트에는 “이제 전면 강제분업이 아니라 일본식 임의분업을 주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자주 보이기 시작했다. 대한소아과학회는 신문광고를 통해 이런 요구를 공식화했다.

정부가 보건의료발전대책을 발표한 뒤 의료계가 내놓은 요구사항을 종합해 보면 폐업사태를 풀 수 있는 ‘고리’는 구속자 석방과 수배자 해제 및 약사법 재개정이지만 이는 정부, 특히 복지부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복지부의 모 간부는 “의료계와 대화하다 보면 실체가 보이지 않는 유령을 만나는 느낌”이라며 “구속자 문제는 의료계가 양보하고 약사법 재개정은 정치권에서 약속하는 게 유일한 해결책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송상근기자>song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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