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5년 살림살이 진단]베일에 가린 판공비

  • 입력 2000년 6월 29일 19시 27분


《지방자치 5년은 연세대 행정학과 이종수(李鐘秀)교수의 평가처럼 '관(官)이 민(民)위주의 시각에서 행정을 펼치기 시작한' 성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자치단체장 및 의회의원들의 경험과 능력, 자질 부족등으로 경영상의 많은 난맥상을 드러냈다. 대표적인 것이 주민들의 혈세로 조성되는 예산의 집행을 둘러싼 문제다. 가령 자치단체장들의 판공비 씀씀이 하나만 보더라도 지역 살림살이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동아일보와 참여연대는 지역 살림의 여러 문제점을 짚어보고 개선방향을 공동기획, 시리즈로 엮어 본다.》

판공비 공개내용만을 보면 지난해 가장 많은 판공비를 쓴 광역 자치단체장은 광주시장이다. 총 6억6585만원. 하루 평균 182만4000원이다. 그 다음으로 전북지사(5억8000만원) 전남지사(5억5197만원) 부산시장(5억1579만원) 경기지사(4억6000만원) 등의 순이다. 서울시장은 4억3259만원으로 여덟번째에 불과했다. 과연 이대로일까.

시민단체 등은 실제로 자치단체장들이 쓴 판공비는 베일에 가려 있어 정확히 알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숨겨진 판공비▼

광주시 등 액면상 판공비가 상대적으로 많은 지자체들은 “서울시 등 상당수 지자체가 ‘숨겨진 판공비’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는 “서울시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지자체의 실(室) 국(局)에 단체장이 전용하는 판공비가 숨겨져 있고 이를 얼마나 공개하느냐에 따라 단체장의 판공비 규모가 결정된다”며 “공개된 액수는 대부분 축소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판공비는 크게 기관운영업무추진비(조직운영 홍보 등 포괄적 직무수행에 들어가는 경비)와 시책업무추진비(주요사업 추진을 위해 필요한 경비)로 구분된다. 기관운영업무추진비는 단체장이 직접 운용하고 시책업무추진비는 기관의 사업에 할당되는 돈으로 단체장은 물론 실국 단위까지 배분된다.

단체장의 실제 판공비 중 일부 또는 상당 부분이 바로 실국의 시책업무추진비 속에 숨어있다. 인천의 모구청 경제과 직원은 “올해 우리 과에 경제인 초청 간담회 명목으로 1000만원 가량의 업무추진비가 배정됐지만 실제로 이 돈은 구청장이 쓰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참여연대는 지난해 서울시장이 취임 후 1년 6개월간 사용했다고 공개한 판공비는 실국에 배정된 시책업무추진비를 제외했기 때문에 축소된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가 98년 11월20일 서울시장과 시정개혁실무위원들의 간담회때 지출한 식사비 136만원을 담당부서의 의전행사비 명목으로 분류한 것을 확인했다는 것.

한 광역 자치단체 관계자는 “광역 자치단체장의 경우 숨겨진 판공비가 최소 1억원에서 많게는 10억원대에 이를 것”이라고 귀띔했다.

▼판공비 용도 ▼

‘시정 협조자-3733만여원(24.6%), 지역유지와 관변단체-2420만여원(16%), 기관장 공무원-2267만여원(15%), 경찰 공안기관-1508만여원(10%), 언론계-1519만여원(10%), 의회의원-863만여원(5.7%).’

이는 시민단체인 경산진보연합이 밝힌 경북 경산시장의 98년 판공비(총 1억5151만4060원) 지출 내용이다. 시정 협조자가 통상 지역유지나 지역단체 관계자 등임을 감안할 때 판공비의 81.3%가 일반 주민이 아닌 ‘지역의 강자(强者)’들을 위해 사용됐음을 나타낸다.

경산진보연합측은 “서민이나 불우이웃을 돕는데 쓴 돈은 총액의 0.7%인 107만원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평화와 참여로 가는 인천연대’는 지난해 인천 동구청장이 98년 8∼12월 세차례에 걸쳐 가요주점과 단란주점에서 술값과 봉사료 등 133만원을 판공비로 낸 사실을 밝혀냈다. 당시 지출 명목은 ‘자치행정 발전 등을 위한 구의원들과의 간담회’. 회사원 이재혁씨(30·인천 연수구 연수동)는 “단란주점에서 술 먹는 게 공무라면 세상에 공무 아닌 것이 어디 있겠느냐”며 분노했다.

<이명건기자·부산·전주〓조용휘·김광오기자>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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