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 무엇이 문제인가]醫-政 갈등 점검

  • 입력 2000년 6월 21일 19시 24분


《사상 유례가 없는 이번 의료대란 사태의 시발점은 7월1일 시행 예정인 의약분업이다. 의약분업은 우리나라를 제외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이 이미 시행하는 의료체계로서 약물 오남용을 방지함으로써 국민 건강을 보호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상황은 이같은 본래의 목적은 잊혀지고 정부와 의료계의 힘겨루기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의료소비자인 국민에게 있어 의약분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의사들은 왜 폐업이라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국민건강권문제와 의료보험체계문제를 중심으로 정리한다. 》

▼醫 "완전분업" 政 "의료비 부담 증가"▼

▽국민건강권〓약물 오남용을 방지하고 국민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의약분업을 시행해야 한다는 데는 정부와 의사 모두 이견이 없다. 실제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항생제 내성률은 세계 1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병원에서 환자에게 처방하는 의약품의 수는 외래환자가 4.2종, 입원환자는 6.3종으로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인 1∼2종보다 훨씬 많다. 항생제 처방비율은 58.9%로 WHO 권장치인 22.7%보다 배가 높다.

국민건강권 보호라는 분업의 취지에 대해서는 양측이 모두 공감하면서도 시행방안에 대한 정부와 의료계의 입장은 큰 차이가 있다. 정부는 분업과 함께 국민 의료비 부담을 줄이자는 것이고 의료계는 의료비 부담이 늘더라도 서구식 완전의약분업을 하자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바에야 의료 환경이 성숙될 때까지 의약분업을 미룰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의약분업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은 정부의 입장과는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국민 대다수가 분업을 불편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진료비 증가도 원치 않는다.

지금까지 병의원이나 약국에서 ‘원스톱’으로 진찰도 받고 약도 구입할 수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진료 따로, 약 따로의 현실이 되는 것이다. 특히 분업이라는 제도에 어두운 노인들은 의사들이 약을 조제해주지 않는 상황 자체를 이해하지 못해 큰 혼선과 불편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관절염을 앓고 있는 김모씨(62)는 “7월부터 병원에서 약을 안준다니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며 걸어서 병원 다니기도 힘든데 주사 한대 맞으려고 약국에 몇번씩 걸음을 하란 말이냐고 말했다.

분업은 생업 때문에 병원에 갈 시간이 없는 저소득층이나 장애인에게도 큰 불편을 줄 것으로 보인다. 리어카 행상이나 공사판에서 막노동하는 사람들의 경우 7월부터 병원과 약국으로 이중걸음을 하게 될 경우 생업에 차질을 빚는 경우도 생길 것이라는 예측이다.

의사 임모씨는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국민의 수용태세가 안돼 있으면 시행을 못하는 것 아니냐”며 “하물며 현재의 분업안이 불완전하고 분업의 주체인 의사들이 공감을 못하는 상황에서라면 국민의 불편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醫 "수가 올려야" 政 "재정압박 우려"▼

▽의료보험 체계〓의사들은 의료보험수가를 몇푼 더 올려받자고 의약분업에 반대하며 집단폐업에 들어간 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부가 의보수가를 지나치게 규제한 것이 왜곡된 진료체계를 만든 한 요인임은 분명하다.

국내에 의료보험제도가 처음 도입된 77년을 기준으로 98년 7월까지의 의보수가 인상률은 514.71%로 해마다 평균 25.7%씩 인상됐다. 이는 같은 기간에 소비자 물가가 507.91%, 연평균 25.4% 오른 것보다 약간 높은 수치이다.

그러나 의료계는 의보제도가 출발할 때 워낙 낮은 수준으로 책정된데다 역대 정부가 국민불만을 의식해 의보수가를 물가와 연계시키며 계속 억제해왔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비현실적인 수준이라고 지적한다. 국민의 경제력에 비해서도 의보수가가 낮으니 병의원은 진료원가의 65% 정도만 보상받고 나머지는 비보험 의료행위나 약가 마진 등으로 버텨온 것도 이런 현실 때문이라는 것.

경기 안양시의 개원의사인 이모씨는 “약가 마진으로 인한 이윤 수입이 상실돼 많은 의원들이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도산사태도 우려된다”며 “정부가 앞으로 수가인상을 통해 보상해 줄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이를 믿는 의사는 아무도 없다”고 말한다. 의보수가를 시장 원리보다 공공 가격으로 통제하려는 방침이 크게 변하지 않는 한 분업으로 의료계가 손실을 입지 않도록 하겠다는 발표를 믿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의보수가 조정은 곧 재정부담과 의료보험료 인상에 따른 국민부담으로 이어진다는 데 정부의 고민이 있다.

<정성희·송상근기자>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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