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교과서가 자율-창의 막는다"

  • 입력 2000년 5월 29일 19시 27분


'획일적인 교과서가 경쟁적인 암기식 입시 교육을 부추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산하 전국교과모임연합은 이 같은 이색적인 주장을 펴며 국가가 발행하거나 발행 허가를 한 도서만을 교과서로 사용하도록 한 규정을 폐지하라는 청원서를 교육부에 제출키로 했다

이 모임은 또 교과서 외의 도서를 수업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 51조'가 '헌법이 보장한 학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취지의 헌법소원을 내 법정 투쟁을 하기로 했다.

교과서의 내용과 체계가 획일적이어서 '반복 학습'으로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어 과외가 성행하는 등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 이 모임의 주장.

▼현행 교과서 제도▼

교과서는 △교육부가 저작권을 가진 1종 교과서(국정 교과서) △교육부 장관의 검정(檢定)을 받은 2종 교과서(검정 교과서) △교육부 장관의 인정(認定)을 받은 인정 교과서 등 3종류다. 실제 활용되는 교과서는 1, 2종이 대부분.

서울 경신고 송병렬(宋秉烈)교사는 "교과서 검정제도는 1908년 일제가 민족주의 사상의 전파를 막으려고 처음 만든 엄격한 통제 수단"이라며 "식민지시대의 통치수단이자 군사독재의 유물인 이 제도는 자율과 창의를 강조하는 교육방향과도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춘천교대 이도영(李道榮)교수는 △국가가 교과서를 독점하는 것은 자유 민주주의의 원리와 맞지 않고 △정권의 영향력을 배제하기 어렵고 △획일적 내용이 창의력과 상상력을 가로막는다고 비판했다.

국정교과서의 연구 개발 예산이 검인정 교과서의 6분의 1 수준이며 개발 기간이 짧아 교과서 질이 떨어진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다.

▼개선안▼

전교조는 모든 출판사가 교과서를 자유롭게 발행하고 일선 학교에서 교과서를 선택하는 '자유 발행제' 도입을 제안했다. 이 제도는 △경쟁을 통해 창의적이고 질 좋은 교과서가 만들어지고 △학교의 선택 폭이 넓어져 다양한 교육이 이뤄지며 △학생의 적성과 수준에 맞는 교과서를 선택함으로써 개별화 교육이 가능하다는 것.

이인규(李仁圭)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 정책실장은 "자유 발행제가 도입되면 교과서 가격이 오르게 된다"면서 "국가가 교과서를 구입해 학생에게 무상으로 대여하자"고 제안했다.

▼교육부 입장▼

교육부 이현목(李鉉穆)교과서발행과장은 "이미 예체능 컴퓨터 등 일부 전문 교과목은 자유 발행제를 실시하고 있다"면서 "국가 전체적으로 교육의 일관성을 유지하려면 모든 교과목에 자유 발행제를 도입하기는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이과장은 교과서의 질과 관련해 "교과서 1권의 개발 비용은 약 3000만원으로 국가 재정 여건상 적정한 수준"이라며 "개발기간은 2년으로 결코 짧지 않다"고 주장했다.

교육부는 또 자유 발행제는 △교과서의 질을 보장하기 힘들고 △교과서의 수준이 다양하면 대학수학능력시험 등 국가가 시행하는 시험의 출제 수준을 정하기 어려워진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의 반응▼

학생과 학부모들은 "교과서가 다양해지면 현재보다 더 혼란스럽고 평가도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면서도 현행 교과서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

청운중 2년 정모군은 "교과서의 내용이 빈약하고 삽화도 이해할 수 없어 주로 참고서를 본다"면서 "다양하고 재미있는 교과서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학부모 김동선(金東璇·충북 청주시 율량동)씨는 "미국에서는 주나 학교마다 배우는 내용이 다르다"면서 "큰딸이 미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다양한 교재와 시청각 자료로 공부해 창의력이 우리나라 학생들보다 앞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진영기자>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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