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헌 결정난 법률로 피해" 국회책임 첫 손배소

  • 입력 2000년 4월 30일 19시 37분


기본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지난해 4월 위헌 판결을 받은 ‘택지초과소유상한에 관한 법률’(이하 택지소유상한법)로 인해 억대의 부담금을 냈던 피해자들이 당시 법을 제정한 국회에 책임을 물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위헌 판결을 받은 법률 때문에 피해를 본 당사자가 법률을 집행한 정부에 손해배상을 요구한 적은 있지만 법을 제정한 입법부의 ‘불성실 심의’를 근거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김모씨(73)와 구모씨(69)는 최근 서울지방법원에 낸 국가손해배상청구소송 소장에서 “국회가 기본권 침해 소지가 있는 법을 제정한 것은 불성실 심의에 원인이 있다”며 “국회가 잘못 제정한 법에 의해 피해가 발생했기 때문에 국가는 1억5000만원씩을 배상하라”고 주장했다.

89년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기 위해 13대 국회가 제정한 택지소유상한법은 택지가 모자란 도시지역에서 개인이 일정면적 이상의 대지를 소유하지 못하도록 제한한 법률. 제한범위를 초과해 대지를 소유한 사람에게는 무거운 부담금을 물리도록 규정했다.

이번에 서울지방법원에 소송을 낸 김씨 등은 서울과 부산 등에 규정 면적이 넘는 대지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각각 1억5000만원의 부담금을 냈지만 위헌 법률로 인한 민사상의 피해를 소급해 배상하지 않는다는 원칙 때문에 돈을 되돌려받을 수 없었다. 김씨 등이 소송을 제기하자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도 이번 소송을 계기로 공개적인 ‘국회책임론’을 제기하고 나설 태세여서 관심을 끌고 있다.

참여연대 박원순(朴元淳)사무총장은 “우리 국회는 소모적 정쟁(政爭)으로 입법부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면서 “법률 제정을 위임받은 국회가 고유 의무를 다하지 않을 경우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이번 소송의 결과에 따라 택지소유상한법뿐만 아니라 역시 위헌 판결을 받은 토지초과이득세법에 의해 세금을 낸 사람 등 수만 명의 해당자들이 잇따라 비슷한 소송을 낼 가능성이 있어 재판 결과가 주목된다.

<박정훈기자>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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