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 "지키면 손해 어기면 이익"…엉성한 규정 탈법 불러

  • 입력 2000년 3월 30일 19시 45분


‘지키면 손해, 어기면 도리어 이익.’

교통법규 위반, 아파트 내부구조 변경 등 생활과 밀접한 법규 위반에 대한 처벌 규정에 허점이 많다. 엉성한 법규나 행정조치가 ‘법대로 하면 손해’라는 탈법의식을 부추기고 있을 정도다.

▼납부기한 지키면 손해▼

회사원 손모씨(32·서울 서대문구 아현동)는 지난달 과속으로 달리다 무인단속 카메라에 걸려 범칙금 6만원을 내고 15점의 벌점 처분을 받았다. 그 후 손씨는 회사 동료로부터 “납부기한을 넘기면 과태료만 더 내고 벌점은 없다”는 얘기를 듣고 ‘설마…’ 했으나 알고 보니 사실이었다.

현행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규정 속도보다 시속 20㎞ 이상을 초과해 달리다 단속될 경우 기한(출석요구서 발송일로부터 15일) 내에 경찰서에 출석하면 범칙금을 내고 벌점 처분을 받는다. 하지만 이 기한을 넘기면 벌점은 없어지고 기존 범칙금에 1만원이 가산된 과태료만 내면 된다.

이 때문에 벌점 누적으로 인한 면허정지 처분과 보험료 할증 등의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기한을 어기는 운전자가 많다. 경찰 관계자는 “무인 카메라에 단속된 운전자 10명 중 8명은 일부러 출석을 늦춰 과태료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시 군 구 등 지방자치단체가 부과하는 4만∼5만원의 주차위반 과태료도 안내고 버티는 사람이 결과적으로 이득을 본다. 아무리 늦게 내더라도 가산금이 붙지 않고 차량을 사용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각 지자체는 주차위반자가 1년 가량 과태료를 내지 않으면 서류상으로 차량을 압류하는 절차를 밟지만 실제로 집행은 하지 않고 있다. 과태료 체납을 이유로 재산상 피해를 주는 것은 지나친 법 집행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

주차위반 과태료를 체납한 경우 차량을 팔거나 폐차할 때 과태료와 함께 소액의 해제비(2000∼3000원)만 내면 압류가 풀린다.

이 때문에 각 지자체의 과태료 체납액이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 서울 25개 구청의 경우 올 1월말 현재 주차위반 과태료 납부율은 40∼60%에 불과하고 체납액은 총 3300여억원에 달한다.

▼자진신고하면 손해▼

경기 고양시 일산구 마두동에 사는 주부 김모씨(35)는 지난해 ‘아파트 내부구조를 불법 변경한 가구는 자진신고하라’는 동사무소의 공고문을 보고 고민 끝에 ‘자수’했다. 그랬더니 얼마 후 구청에서 ‘베란다와 거실을 구분하는 분리구획 시설물을 설치하지 않을 경우 이행강제금이나 벌금을 물리겠다’는 계고장이 날아왔다.

구청에 문의했더니 “97년 건설교통부에서 ‘안전에 이상이 없다고 인정될 경우에는 베란다와 거실을 구분하는 고정식 주름문을 설치하면 된다’는 지침을 보냈으니 주름문이라도 설치하라”고 해 김씨는 수십만원을 들여 주름문을 설치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내부구조를 변경하고도 자진신고를 하지 않은 집들은 어떤 조사나 제재도 받지 않고 넘어갔다. 양심껏 자진신고한 집들만 안전에 도움도 안되는 주름문을 설치하느라 돈을 쓰고 속을 끓인 것이다.

▼늘어나는 불법 증 개축▼

현행 건축법은 불법적으로 증 개축을 했을 경우 지자체가 건물주에게 위법 건축물의 평당 시가 표준액의 1∼50%에 해당하는 이행강제금을 정비가 완료될 때까지 연 2회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행 강제금보다 불법으로 넓힌 건물에 가게 등을 차려 얻는 수입이 훨씬 많기 때문에 대부분의 건물주들이 불법 증 개축을 일삼고 있다.

서울의 경우 불법 증 개축이 계속 늘어나 지난해 12월말 현재 단속 대상이 1만8600건으로 94년(8533건)에 비해 2.2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명건기자>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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