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고죄 폐지추진 의미]성폭력 '사회적 범죄'엄벌

  • 입력 2000년 3월 8일 22시 15분


“대학생 주부 등 여자 수십명을 성폭행한 얼굴 두꺼운 ‘색마(色魔)’를 검거했지만 피해자들이 수치심과 두려움 때문에 ‘고소하지 않겠다’고 해서 처벌하지 못했습니다.”

서울의 한 경찰관이 최근 한국성폭력상담소 최영애(崔永愛)소장에게 털어놓은 하소연이다.

40대 회사원 K씨는 몇 년전 아내와 그의 정부(情夫)를 간통혐의로 고소했다. 그런데 아내는 정부와 짜고 “성폭행 당했다”고 주장했고 검찰은 어쩔 수 없이 정부를 성폭행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그러나 첫 재판이 열리기도 전 K씨 아내는 고소를 취하했고 그는 풀려났다.

성폭력범죄가 고소해야 처벌이 가능한 친고죄(親告罪)라는 이유 때문에 파생된 폐해들은 이밖에도 많다. 법조계에서는 “성범죄가 친고죄여서 얻는 득(得)보다 실(失)이 훨씬 많다”며 ‘모든 성범죄에 대해 친고죄를 폐지하겠다’는 민주당의 공약을 일단 반겼다.

그러나 법조인들은 “성범죄를 친고죄로 규정한 이유가 피해자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인 만큼 친고죄를 폐지할 경우 피해자의 사생활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를 심도있게 논의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행 성폭력특별법은 △친족관계에 의한 강간 △장애인에 대한 간음 △13세 미만의 미성년자에 대한 강간 강제추행 등에만 고소 없이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이밖의 성범죄는 친고죄로 남아있기 때문에 많은 피해 여성들이 주위의 시선이나 보복의 두려움 때문에 신고를 꺼려 왔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 따르면 성범죄 신고율이 90년 2%, 지난해에도 겨우 6%에 그칠 정도. 서울고법 형사부의 한 판사는 “피해여성이 용기를 내 신고를 한 뒤에도 가해자가 돈으로 협상을 요구하거나 보복의 위협을 가하면 고소를 취하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성범죄가 친고죄 폐지로 ‘사회적 범죄’로 규정되면 피해자들의 고소 취하를 요구하며 자행되는 은밀한 보복 위협도 크게 줄어들 수 있게 된다.

서울지검의 한 검사는 “성폭력 피해자를 목격하면 강도나 살인 사건처럼 지체없이 신고하는 시민의식이 자리잡아야 성범죄를 추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여성계의 한 인사는 “성폭력 피해자의 비밀이나 신상을 공개한 수사기관이나 언론기관 등을 처벌하는 등 피해자 보호장치도 갖춰야 한다”고 당부했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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