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개정이후 파장]無法혼탁선거 빌미 줄수도

  • 입력 2000년 1월 31일 20시 08분


총선연대 등 시민운동단체들과 정치권이 선거법 개정방향을 둘러싸고 두번째 충돌국면을 맞고 있다.

시민단체의 선거운동을 금지한 선거법 제87조의 개정을 둘러싸고 빚어졌던 첫번째 갈등에 비해 이번 충돌은 선거현장에서 자칫 무한경쟁과 무법(無法) 혼탁선거를 촉발하는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파장이 크게 주목된다.

우선 총선연대는 정치권의 선거법 합의안에 대해 항의 헌법소원 독자입법안 제출 등의 각종 방법을 총동원해 재개정을 촉구하되 그 뜻이 관철되지 않을 경우 현재 구상중인 각종 낙선운동의 방법들을 그대로 실행에 옮길 것임을 분명히 했다.

예컨대 총선연대의 최열공동대표는 31일 “선거법이 이런 수준에서 개정되면 마찰은 불가피하다”면서 “우리는 구속도 불사한다”고 밝혔다.

이런 불복종과 저항이 계속될 경우 이번 선거국면의 가장 중요한 두 축인 시민운동권과 정치권이 충돌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고 그 결과로 선거법이 묵살되면서 권위를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 이렇게 사전선거운동과 선거운동 기간의 불법 탈법운동을 규제할 잣대가 무력화되는 상황에서는 선관위와 검찰 경찰 등의 단속 역시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선관위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시민운동권의 진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칫 선거법을 우습게 보는 정치권과 유권자 일각의 분위기를 시민운동권이 앞장서서 부추기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선관위 입장에서는 정당과 후보자들에게 금지된 홍보물의 제작과 배포, 집회, 가두행진, 서명운동 등을 시민운동권에 한해 풀어줄 수는 없다는 것. 그것은 선거운동 주체들과의 형평 차원에서도 맞지 않고 ‘통제장치 없는 표현의 자유’를 법률로 인정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이처럼 선거법이 사실상 효력을 상실하면 그 결과는 ‘만인에 대한 무차별 투쟁’, 다시 말해 무한경쟁으로 번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모든 정당과 후보자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선전 및 조직방법을 동원할 것이며 이른바 ‘공익적 시민단체’들뿐만 아니라 각종 이익단체와 연(緣)으로 이어진 단체들까지 그 틈을 비집고 구태(舊態)를 연출할 가능성이 높다.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돈 많은 후보자’가 선거운동 분위기를 장악하게 된다는 것. 그런 후보자는 지지자들을 굳이 선거운동원으로 등록시키거나 동원할 필요없이 얼마든지 그럴듯한 명칭의 단체 또는 사조직을 결성해 외곽에서 자신을 지지하게 만들 수 있다.공명선거와 부패 무능 정치인의 퇴출을 위해 시작된 운동이 이렇게 ‘돈선거’의 양상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은 큰 역설이 아닐 수 없다.선관위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선거법의 대원칙이 ‘형평’이라는 점을 시민운동권과 정치권이 모두 유의해 한발짝씩 물러서야 해결의 길이 보일 것”이라고 권유했다.

<김창희기자>ins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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