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죄확정 안됐다" 17명 총선 출마채비 논란

  • 입력 2000년 1월 6일 19시 38분


현정부 들어 여야의 고소고발 사태와 정치인 사정(司正) 수사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비리혐의 정치인들이 ‘유죄가 확정되지 않았다’며 다시 16대 총선에 출마할 채비를 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이들 비리혐의 정치인들이 법의 심판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총선에 나서 국민의 심판을 받겠다고 하는 것은 법과 국민에 대한 모독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또 이들에 대한 재판을 신속히 진행하지 못한 사법부에 대해서도 법의 권위를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6일 법원에 따르면 새정부 들어 여야의 고소고발 사태와 사정 수사로 기소돼 재판이 진행중인 정치인은 모두 17명에 이르고 있다. 이들은 선거법 위반과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한나라당 김홍신(金洪信)의원을 제외하면 모두 뇌물 및 금품수수 비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따라서 이들 대부분은 재판에서 혐의가 인정돼 확정판결을 받을 경우 국회의원 출마자격을 상실할 가능성이 높다. 현행 선거법은 일반 형사사건에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을 경우 국회의원 피선거권이 박탈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중 유죄가 확정된 정치인은 아직 한명도 없다. 국민회의 김종배(金宗培)의원과 한나라당 조익현(曺益鉉)의원이 1심에서 각각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항소심이 진행중이며 나머지 15명은 아직 1심 판결도 내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3∼18차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현재의 재판진행 추세로 볼 때 이들에 대해 16대 총선이 실시되는 4월까지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내려질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이들 대부분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총선출마 채비를 하고 있으며 이들중 일부는 이미 공천내락까지 받아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정치인에 대한 재판이 지연되고 있는 것은 일차적으로 정치인들에 대한 불합리한 불체포특권 때문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회기중에는 국회의 사전 동의없이 체포할 수 없다는 불체포특권을 이용해 구속수사와 재판을 모면하고 재판에 고의적으로 불출석하면서 재판을 늦춘다는 것이다. 차병직(車炳直·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변호사는 “불체포특권은 국가를 위해 정상적인 의정활동을 하려는 국회의원을 부당한 탄압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부여된 권리인데 우리 정치인들은 이를 악용해 정당한 법집행을 피하는 수단으로 악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법의 권위를 부정하고 있다”며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정당한 이유없이 재판에 불출석하는 정치인에 대해서는 궐석재판을 인정하는 등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수형 부형권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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