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문건 수사]'하드디스크 복원' 소동

  • 입력 1999년 11월 14일 19시 57분


“조금 전 김포공항을 통해 중앙일보 문일현(文日鉉)기자가 중국에서 교체한 원래의 하드디스크를 입수해 이쪽으로 운반중입니다.”

12일 오후 5시25분. 정상명(鄭相明)서울지검 2차장의 표정은 몹시 상기돼 있었다. 이때부터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것인지, 열린다면 무엇이 튀어나올 것인지에 수사팀과 기자들의 관심이 온통 집중됐다.

이날 오후 10시경. 임휘윤(任彙潤)서울지검장, 정차장과 임승관(林承寬)1차장이 기자실로 내려왔다.

이들의 표정은 밝았다. 특히 정차장은 “문기자가 생각보다 ‘빡빡’ 지워 시간이 걸리겠지만 복원이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중국에서 ‘고수’가 지운 모양이지만 우리에게도 ‘고수’가 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러나 30분 뒤. 정차장은 복원팀의 전화를 받고 급히 6층 사무실로 올라갔다. 복원팀은 이때 정차장에게 “문건과 사신(私信)의 제목이 살아 있고 팩스로 전송된 날짜는 6월23일 몇시 몇초”라고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20분 뒤 기자실에 온 정차장은 “문기자가 ‘덧씌우기’방법으로 파일을 지웠다고 한다”고만 전했다.

그러나 수사팀은 문서가 ‘글’이 아닌 ‘훈민정음’으로 제작된데다 문기자가 수차례나 덧씌우기를 해 정작 중요한 문건내용이 복원되지 않자 다음날 ‘전문가’를 부르기로 하고 밤12시 무렵 불을 끄고 퇴근하고 말았다.

일부 신문에선 이때까지의 ‘정황’을 근거로 ‘하드디스크 완전복구’라는 기사를 송고했고 또 일부는 문건 내용까지 설명하는 웃지못할 해프닝이 빚어졌다.

13일 오전 10시. 정차장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문건과 관련된 파일의 극히 일부만 복원했다. 너무 앞질러간 언론보도 수준의 근처에도 못갔다”고 털어놨다.

그러다가 복원전문가가 오후 2시 검찰청에 도착했다. 바로 ‘훈민정음’소프트웨어를 개발한 ㈜삼성SDS 소속 개발팀원 2명이었다.

이들은 2시간 동안 작업을 했지만 상대방 ‘고수’의 솜씨에 혀를 내둘렀고 “문건 내용은 절대로 복원할 수 없다”는 자술서까지 쓰고 검찰을 떠났다.

이날 오후 7시. 정차장이 “복원 실패. 복원팀 전원 철수”를 선언함으로써 25시간25분 동안의 ‘하드디스크 복원 해프닝’은 싱겁게 끝이 났다.

〈신석호·김승련기자〉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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