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유도 특검팀 내분]검찰 수사참여 갈등 끝내 폭발

  • 입력 1999년 11월 2일 19시 48분


파업유도 사건 수사팀의 강원일(姜原一)특별검사와 김형태(金亨泰)특별검사보의 갈등의 고리는 출범초기 강특검이 기존 검사 2명을 파견받은데서 출발했다.

강특검은 “검찰이 수사대상인 만큼 검사파견은 받지 말자”는 의견을 피력했던 김특검보와 상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갈등은 강특검이 이 사건에 대해 공안 합수부 관계자 처벌을 일찍부터 주장해온 재야 출신 특별수사관들을 임명함으로써 ‘잠복’했다.

강특검은 수사 성공 여부를 떠나 검사와 재야인사라는 두 집단의 공동작업으로 만들어낸 결과가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기존 검찰을 수사 협조대상으로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이번 기회에 공안사건에 개입한 검찰의 음모를 파헤친다는 재야의 입장을 갖고 있던 김특검보는 기존 검찰을 협조기관이 아니라 수사대상으로 생각해 근본적인 인식의 차이를 갖고 있었다.

수사초기 강특검은 파견검사에게 수사상황을 알리지 않는 등 상당한 주의를 기울였다는데 양측의 이견이 없다.

잠복된 갈등은 10월27일 대전지검에서 자료를 입수, 반환하는 과정에서 수면 위로 드러났다. 김특검보는 검찰에 대해 ‘압수수색’을 주장했으나 강특검이 “결정적인 자료인데 불필요한 긴장을 조성하지 말라”고 만류해 협조형식으로 자료를 입수해 왔다.

김특검보는 조폐공사 파업사건 서류와 기타 공안서류 등 7보따리를 입수했다. 김특검보는 2일 “다른 사건의 국가개입 증거가 나올 경우 이 사건 기소 때 방증자료로 쓰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 사실을 안 대전지검장은 28일 오전 강특검에게 전화를 걸어 “수사와 관련이 없는 자료들이 함께 제출됐다”며 반환을 요청하며 검사 2명과 수사관 등 7명을 보냈다.

이들은 수사팀과 함께 자료를 분류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또 파견검사가 대전지검에서 사적인 연락을 받은 사실이 밝혀지고 법무부가 “협조할 자료도 없고 장관이 화를 낸다”며 협조에 응하지 않아 분위기가 격앙됐다.

김특검보는 “수사대상기관과 함께 압수된 자료를 분류할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했고 “원만히 협조하라”는 강특검과 고성이 오갔다. 김특검보가 자리를 박차고 나간 뒤 특검수사팀 스스로 자료를 분류, 반환했다.

29일 정오. 김특검보는 A4용지 한장짜리 ‘특별검사팀 운용지침’을 강특검에게 내밀었다.

강특검은 4개항의 문건 내용이 “수사를 지휘하는 특검으로서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내용”이라고 판단했다.

이날 오후 6시 강특검은 “내가 수사를 지휘할 것이며 검사와 검찰출신 수사관을 즉각 이 사건수사에 참여시킨다. 이 원칙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은 입장을 밝히라”고 선언했다.

김특검보 등 5명은 “최소한의 원칙도 보장하지 않는다면 더이상 수사할 수 없다. 더 이상 지휘를 받지 않겠다”며 회의장을 나왔다.

〈신석호기자〉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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