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이 무너진다]세미나서 현장교육 비판 쏟아져

  • 입력 1999년 10월 26일 20시 58분


“수업시간에 3분의 1 이상이 잠을 잔다. 나머지 중에도 절반 이상이 만화책을 보거나 휴대전화로 장난을 친다. 수업을 듣는 학생은 학급당 10명 정도다.”(학생)

“학생들중 일부는 아예 빈 가방, 빈 손으로 등교한다. 교과서는 책상에 넣어두고 다니다가 잊어버리면 수업시간에만 다른 반 학생에게서 잠시 빌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교사)

“가방에 책이 있으면서도 귀찮아서 꺼내지 않는 경우도 있다. 공부한 학생의 필기내용을 그대로 베끼면 그만이기 때문에 수업을 들으면 오히려 손해라고 생각한다.”(학생)

▼"탁상행정 탓" 한목소리▼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 강당에서 ‘교실 모습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로 서울고의 교사와 학생, 학부모 150여명이 참석한 세미나에서 터져나온 목소리다.

김덕중(金德中)교육부장관이 참관한 이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은 모두 탁상행정 교육정책 탓에 ‘교실이 붕괴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 학교 생활부장으로 주제발표를 한 이강호교사(45)는 그 원인으로 ‘학생들에게 무서운 것이 없어졌다’는 것을 첫 손으로 꼽았다. 입시위주의 교육은 어제 오늘이 다르지 않지만 교육부가 갑작스레 수요자중심의 교육을 부르짖으면서 학생들을 제압할 방법이 없어졌다는 것.

▼교사들 "통제방법 없다"▼

일일이 감독할 수 없는 봉사활동은 오히려 수업을 빼먹고 끼리끼리 어울려서 노는 시간이 됐고 퇴학처분도 언제든 학생이 원하면 재입학이 가능하기 때문에 ‘종이호랑이’가 돼버렸다.

이교사는 “봉급은 깎이고, 정년은 당겨지고, 학교예산까지 대폭 줄어든 상태에서 교육개혁안이 현장교사의 의견을 반영하기는커녕 교사들을 폭력교사와 촌지교사로 몰아붙였다”며 “교사와 학생, 학부모간의 신뢰회복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교육의 수요자인 학생들도 피해자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학교 1학년 이상훈군(17)은 “지극히 정상적인 학생들이 ‘범생’이라는 이름으로 놀림받고 제대로 공부하는 것이 오히려 바보스러운 짓으로 여겨지는 가치혼란을 겪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군은 수행평가 도입 문제에 대해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대부분이 ‘교육적 여건이 안돼 있는 우리나라 형편상 실수’라고 답했다고 전했다.

이군은 “교실이 무너진 이유는 실제로 교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른 채 정책을 세우고, 그 효과를 전시용으로 포장된 번지르르한 결과로 판단하고 결론을 내린 분들께 있다”고 말했다.

학부모 오영순씨(43)는 “교육부의 교육정책이 아직도 뿌리내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현실에 혼란스러움과 당혹감을 느낀다”며 “정권이 바뀌거나 교육부장관이 바뀔 때마다 교육기관 전체에 천재지변이 일어나듯 교육정책이 바뀌는 현상은 없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년대계 일관성 절실▼

이날 세미나를 개최한 임동권(任東權)교장은 “학교현장에 대한 최근의 여러 우려를 놓고 대책을 모색하기 위해 가감없이 솔직한 의견을 내놓게 했다”면서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할 때 교육개혁의 의미도 제대로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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