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미국인-40대 한국인 30년만에 부자상봉

  • 입력 1999년 10월 8일 18시 28분


‘30년만의 아름다운 재회.’

8일 낮12시40분경 서울 관악구 신림동 서울대내 박물관 라운지는 때아닌 울음바다였다.

“아버지. 보고 싶었습니다.” “아들아, 나도 보고 싶었다.”

큰 키에 백발이 성성한 미국인 노신사는 40대 한국인 남자를 힘껏 부둥켜 안았다. ‘아들’은 몇번이고 ‘아버지’에게 큰 절을 올렸고 ‘아버지’의 눈은 점차 눈물로 얼룩졌다.

이들은 강원근(康源根·43·개인택시운전사·경기 고양시)씨와 미국 미시간대 월미엄 말 명예교수(73). 서로 쓰는 언어는 달랐지만 이들의 대화는 끝이 없었다.

두 사람은 60년대 중반 한국의 형편이 어려운 어린이들과 미국인 후원자를 이어주는 ‘양친회’를 통해 부자의 인연을 맺었다. 말교수는 어머니와 함께 어렵게 살던 강씨에게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해 주고 자신의 딸들과 함께 몇차례 한국을 찾는 등 피부색이 다른 아들을 위해 정성을 다했다. 그러던 중 강씨가 11세 때부터 말교수가 바빠지는 바람에 편지왕래만 이어지다 84년 이마저 두절됐다. 강씨가 이사를 갔던 것.

강씨가 품속에서 꺼내 아버지에게 내민 낡은 흑백사진에는 당시 까까머리에 검정고무신을 신은 한국 어린이와 40대 미국인이 웃고 있었다.

말교수는 미국 동양음악회장을 지낸 동양음악의 권위자로 제4회 동양음악 국제학술회의에 ‘동아시아 음악에서 수(數)의 상징성’이란 논문을 발표하기 위해 방한했다가 사연을 알게 된 서울대 음대 관계자의 도움으로 강씨를 찾게 됐다.

〈이헌진기자〉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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