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씨 잔형면제 의미]여론-정치적 계산 '절충수'

  • 입력 1999년 8월 12일 00시 05분


김현철(金賢哲)씨에 대해 취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진 잔형집행면제 조치는 여론과 정치적 계산 사이에서 나온 ‘절충수’로 보인다.

법조인들은 김씨가 지난달 26일 대법원 재상고를 취하하기 이전에 정권 핵심부와 김씨 사이에 사면에 관한 사전교감이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변호사는 “실형복역을 피하기 위해 상고와 재상고를 해가며 2년 넘게 법정투쟁을 벌였던 김씨가 아무런 보장도 없이 재상고를 포기했겠느냐”고 말했다.

검찰이 김씨의 형 확정 이후 이례적으로 그에 대한 소환과 재수감을 미뤄온 점도 사전교감을 짐작케 하는 근거다. 검찰이 현철씨를 사면하려는 청와대의 뜻을 알고 일부러 미적거렸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청와대와 현철씨 사이에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이같은 ‘밀약’은 여론의 반발과 시민단체의 거센 비판을 받으면서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특히 친여 성향의 제2건국위원회까지 나서 현철씨 사면을 반대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청와대측은 현철씨 사면문제를 재고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청와대는 현철씨에게 사면을 다음 기회로 미루자는 등의 ‘양보’를 요구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재상고 취하라는 ‘외통수’가 이미 던져졌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청와대와 현철씨는 ‘재협상’을 통해 잔형집행면제조치를 선택함으로써 서로 명분과 실리를 나눠가진 것으로 보인다.

잔형집행면제로 김씨는 재수감을 피할 수 있는 실익을 얻게 됐다. 반면 청와대는 벌금과 추징금을 집행함으로써 최소한의 사법정의를 세운 것으로 ‘자족’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복권도 유보함으로써 현철씨의 숙원으로 알려진 정치활동을 막았다. 그러나 김씨에 대한 이번 조치는 그의 ‘죄’에 상응하는 실질적인 ‘벌’을 기대했던 국민여론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어서 반발이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 사면의 결과 못지않게 그 ‘과정’에 대해서도 비판여론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 뜻을 무시한 채 ‘정치적 거래’를 한 흔적이 뚜렷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참여연대 김민영(金旻盈)사무국장은 “권력형 비리를 엄정히 처벌해야 할 시점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김씨보다 죄질이 덜한 범죄를 짓고 수감중인 재소자와 그 가족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수형·김승련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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