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집단서명 파동 (上)]평검사 불만 폭발

  • 입력 1999년 2월 2일 19시 36분


《검찰이 요동치고 있다. 한 변호사의 수임비리가 몰고온 파장이 이제 검찰조직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평검사가 모여서 총장 사퇴를 요구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로 번졌다. 오늘의 파란을 몰고온 배경과 원인을 살펴보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위한 조건 등을 점검한다.》

유례없는 검찰총장 퇴진요구 서명에 참여한 서울지검의 한 젊은 검사는 2일 자신들이 나설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점 벚꽃이 떨어졌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고 태풍이 몰아친다. 이제 나무는 뿌리째 뽑히려 하는데 위에서는 하늘과 태풍을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한점 벚꽃’은 대전 이종기(李宗基)변호사 사건에 연루돼 사표를 낸 검사들을 가리키는 것. 윤동민(尹東旻)법무부 보호국장이 마지막으로 남긴 “벚꽃이 사라진다”는 말에 빗댄 것이다. 나무는 검찰 조직, 하늘은 ‘민심’이라고 검사는 설명했다.

검사들은 “대전사건 수사결과를 지켜 보면서 수뇌부가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판단이 들었다”고 말했다. 국민과 후배검사들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전체 검찰을 대표하는 총장이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검사들의 집단행동은 직접적으로 총장 등 수뇌부가 선배검사로서 ‘바람’을 막아주기는커녕 오히려 여론과 정치에 기대어 수습하는 식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후배검사들을 여론과 권력이 요구하는 희생양으로 삼아 자신들만 자리를 지키려 했다는 비난이다.

지방의 한 검사는 “대전사건에서 문제가 된 전별금과 떡값 관행은 그동안 보편적인 관행이었고 검찰의 원죄(原罪)였다”고 말했다. 이 검사는 “따라서 ‘재수가 없는 특정 검사’들만이 책임질 일이 아니고 모든 검사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만큼 최고책임자가 ‘총대’를 메야 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한 변호사는 “소장검사들의 반발 배경에는 조직원으로서의 보호본능과 큰 의미에서 집단 이기주의도 작용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떡값이나 전별금에서 비롯된 사건을 ‘검찰 중립화’나 총장퇴진으로 몰아가는 소장층의 행동이 명분이나 논리에서 떳떳하고 충분한 것은 아니라는 법조인들의 지적도 없지 않다.

그러나 소장층의 저항에는 현 검찰수뇌부의 ‘뿌리’에 대한 불신도 작용했다. 한 검사는 “검사가 처음부터 정치권력에 초연하지 못할 바엔 한 정권에 일관성있게 충실해야 하는데 현 수뇌부는 과거정권에 충성하고 현정권에는 그 이상으로 밀착해 검찰의 자존심과 이미지를 구겼다”고 말했다.

검찰 내부의 ‘권력이동’이 집단행동의 원인(遠因)이 됐다는 분석도 있다. 과거 정권하에서 검찰요직을 차지하던 옛 실세들은 새정부 들어 단행된 인사에서 상당부분 소외됐다. 또 이변호사 사건에서도 주로 이런 학연 지연들이 결과적으로 타깃이 됐다. 검찰내에서 신주류로 떠오른 검사들은 상대적으로 집단서명에 소극적이었던 반면 옛 실세그룹과 지연 학연 등이 깊은 소장검사들은 다수 참여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법무부와 검찰 수뇌부는 집단행동을 ‘항명’으로 규정짓고 강온 양면정책으로 검사들을 다스리고 있다. 박상천(朴相千)법무장관은 이 사태를 ‘검사들의 민중운동’으로 규정했으며 대검은 감찰부를 중심으로 주동자 색출에 나섰다. 대검은 다른 한편으로 평검사의 의견을 수렴하고 지검에서도 부장 이상 간부들이 나서서 1대1로 설득작업을 하고 있다. 집단행동 파동은 2일 오후부터 소강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사태가 이대로 온전히 수습되리라고 보는 법조인은 거의 없다. 이미 수뇌부는 도덕적 기능적으로 입은 상처가 너무 깊다. 참여한 검사들의 지향점이 분명하고 각오도 비장하다. 이들이 내세우는 명분은 검찰의 중립과 독립성 확보. 한 검사는 “동기와 배경은 다를 수 있지만 전체 검사들의 목표는 뚜렷하고 각오도 비장하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검사들, 특히 경력 10년 이하의 소장검사들은 전폭적으로 공감과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 검사들의 ‘거사’가 짧은 시간에 이뤄질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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