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논술/우수답안 유형3]

  • 입력 1998년 9월 3일 19시 38분


조지 오웰은 그의 저서 ‘동물농장’에서 동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인간사회를 풍자했다. 동물농장은 반란을 일으킨 동물들이 인간을 내쫓고 모든 동물들이 평등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건설한 것이다. 그러나 유토피아 건설의 희망을 악용한 돼지들에 의해 결국 동물들은 또다른 형태의 지배하에 들게 된다. 이 소설은 사회주의의 허구를 꼬집은 것으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물질 문명속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많은 점을 시사해준다. 그 중 가장 충직한 일꾼중 하나였던 ‘복서’라는 말의 죽음과 그를 둘러싼 사건들에 대해 생각해 보자.

복서는 죽는 순간까지도 그들의 지도자였던 나폴레옹과 풍차로 대변되는 그들만의 유토피아 건설을 믿었다. 그러나 돼지들을 믿고 평생 죽도록 일한 복서는 그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죽음까지도 돼지들에게 철저히 이용당한다. 이는 카를 마르크스가 일찍이 지적했듯이 어느덧 노동으로부터 소외된 채 주체성을 잃고 살아가는 현대 자본주의 체제하의 사람들의 모습과 통한다. 산업 혁명 이후 대량화 기계화된 생산 체제속에서 노동자들은 그들 자신이 생산한 가치들로부터 점점 떨어져 결국 자본과 기술에 예속된 채 살아가고 있다. 현대인들은 물질과 풍요라는 이상을 꿈꾸며 열심히 일하지만 동물 농장에서 풍차가 완성되지 못했듯이 현대인들도 그 이상에 도달할 수 없다. 고된 노동 끝에 죽음을 맞이하게 된 복서에게 돌아온 것은 폐마 도살장으로 팔려가는 일 뿐이었듯이 물질 문명만을 추구해온 현대인에게 오늘날 돌아온 것은 정신 문명의 부재와 인간 소외였다.

그리고 복서가 폐마 도살장으로 팔려갔다는 사실을 알아챈 동물들에 대처하는 돼지들의 모습에서도 현대 사회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정치 선전으로 일관된 공산주의 국가의 언론을 굳이 생각해보지 않아도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진실된 정보만이 알려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자본주의 하에서 언론은 자본에 예속될 수밖에 없으며 상업 자본은 그 이윤추구를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가리지 않는다. 또한 자본은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따라서 우리는 어느새 조작되거나 허위로 보도된 정보들을 접하게 된다. 또 현대인들은 그야말로 정보의 홍수 속에서 그 진위를 파악할 여유도 갖지 못한 채 정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며 그러는 과정에서 비판 정신을 유지하기는 참으로 힘들다. 동물 농장에서 돼지들이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의도적으로 조작된 정보를 이용해 다른 동물들을 이용했듯이 현대인들도 조작된 보도에 의해 진실을 잃어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복서의 죽음은 한편으로는 허무하기도 하다. 비록이상사회건설을 향한 자신의 신념대로 살긴 했지만 결국 그것은 지배자에게 철저히 이용당한 삶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복서가 조금 더 냉정하고 비판적으로 나폴레옹을 비롯한 돼지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면 자신의 삶이 그토록 이용당하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도 혹시나 자신의 주체성을 잃고 맹목적으로 이끄는 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자신의 삶을 의미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비판 정신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며 결국 그것이 보다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이상 사회로 다가가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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