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구조조정 힘들게 됐다』…현대自타결 분석

  • 입력 1998년 8월 24일 19시 56분


정리해고를 둘러싼 노조의 불법파업으로 빚어진 현대자동차사태가 진통끝에 24일 타결됐으나 노사간 자율적 해결이 아닌 정부와 정치권의 개입에 의한 ‘타율적 해결’이라는 선례를 남겨 현대사태는 구조조정을 앞둔 다른 기업과 재계에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현대사태는 우선 처음부터 법과 원칙을 무시한 노조의 강경대응에 정치권의 중재가 개입하는 등 파행적으로 다뤄짐으로써 외국투자가의 불신을 자초했다.

법집행을 엄격히 해야 할 당사자인 정부와 정치권은 법과 경제논리보다는 타결에만 급급한 나머지 구조조정과 노사문제의 본질을 왜곡하고 불법쟁의를 조장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회사측은 노조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중재안을 울며겨자 먹기식으로 받아들일수 밖에 없었다. 수천명으로 예정됐던 정리해고 규모가 2백77명으로 줄어든데 대해 회사안팎에서 정리해고를 안한 것보다 못한 결과가 됐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을 반영한다.

회사측은 1만8천명의 잉여인력중 1.5% 정도의 인원을 정리해고하는 데 1조6천억원(협력업체 손실액 포함)의 피해를 보아 ‘기업 구조조정을 돕는다’는 정리해고의 당초 취지는 완전히 유명무실해졌다.

그나마 해고인원 2백77명가운데 1백67명은 식당종업원으로 고용승계를 보장한 상태여서 사실상 정리해고 인원은 1백10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더욱이 이번 정리해고는 국제통화기금(IMF)체제 극복이란 비상상황에서 추진된 구조조정이란 점에서 과거 임금협상과는 차원이 달랐다.그러나 진행절차가 과거와 전혀 다를 바 없었고 정부나 정치권의 개입행태, 노사문제를 다루는 방식도 6공때나 문민정부때와 전혀 달라지지 않았음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특히 이번 사태에 대한 정부의 미온적인 자세에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정리해고는 노사정합의로 탄생해 입법까지 거친 제도다. 노동법상 쟁의대상이 될 수 없게 되어있다. 따라서 이번 파업은 처음부터 불법이었다. 그러나 파업이 과격화되면서 오히려 생존권투쟁이란 명분이 부각되는 기현상이 빚어졌고 정부는 시종일관 노조에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정부는 공정한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중재과정에서 정치적인 해결책을 선호함으로써 법집행의 엄정성을 스스로 훼손시켰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법적 권리조항의 하나인 정리해고가 여전히 현대자동차라는 개별 사업장 노사간 협상테이블에 오른 현실은 정리해고가 노동시장 유연화에 기여하기 위해선 앞으로도 많은 시일과 각 경제주체의 인식변화가 필수적임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경제원칙이 정치권 및 사회단체의 이해에 휩쓸리면서 무시됨에 따라 김대중(金大中)정부의 ‘시장주의에 기반을 둔 구조조정’ 노력이 외국정부와 투자가들로부터 불신을 사게 된 것도 큰 부담이 아닐수 없다.

재계는 현대자동차가 진정한 의미의 정리해고에 실패했다고 분석하고 이에 따라 앞으로 기업 구조조정이 더욱 어려움을 겪게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A그룹 관계자는 “분규기간중 제기된 손해배상과 재산가압류 조치 등을 회사측이 철회하기로 한 것은 향후 발생할지 모르는 집단 이기주의에 미리 면죄부를 준 셈”이라고 주장하고 “살(殺)기업적인 경영환경으로 존폐의 기로에 선 기업들이 어떻게 엄청난 부담을 무릅쓰고 정리해고를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이번 사태로 ‘피를 보지 않고 수술하겠다’는 정부 입장이 분명해진 것 같다”며 “하반기 구조조정의 핵심인 공기업과 금융기관 구조조정마저 집단 이기주의로 좌초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한편 정몽규(鄭夢奎)현대자동차회장과 김광식(金光植)노조위원장은 24일 오전 회사 본관1층 아반떼 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노사가 정리해고 규모와 고소 고발취하 등 핵심 쟁점사항에 완전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노사가 발표한 합의안은 정리해고 인원을 2백77명으로 하고 해고자 위로금을 7∼9개월분 지급하며 정상조업 후 고소 고발 징계를 철회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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