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50년]『民意가 빠진 法은 종이조각일뿐』

입력 1998-07-15 19:45수정 2009-09-25 07:28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17일 제헌절은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된 지 5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러나 5년 남짓만에 한번꼴인 개헌의 역사가 말해주듯 제헌 반세기는 파행과 굴절로 얼룩져 왔다. 87년 직선제 개헌을 쟁취하며 민주주의의 시대를 열었던 ‘6월항쟁’으로 비민주적 헌정사는 일단 마무리됐지만 아직 한국의 민주주의는 미완(未完)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제헌 50년의 자화상과 미래상을 진단해본다.》

‘권력을 위한 헌법에서 국민을 위한 헌법으로.’

50년이라는 짧은 헌정사에서 우리 헌법은 모두 9차례나 권력의 유지나 연장을 위해 개정되는 운명을 맞았다.

이 과정에서 주권자인 국민은 철저히 소외됐다. 개헌은 권력구조의 개편에 주안점이 두어졌고 기본권 신장은 구색맞추기에 불과했다.

이때문에 정치인 학자 변호사 등 관계전문가들은 앞으로는 권력구조 개편보다는 사회복지 환경 등 현대적 의미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국민이 권력기관을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방향으로 헌법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한나라당 현경대(玄敬大)의원은 “87년 개헌(직선제 개헌)이전의 헌법개정은 모두 유신헌법이나 3선개헌과 같이 집권연장 기도나 권력투쟁의 소산”이라며 “앞으로 우리 헌법은 국민복지를 향상할 수 있는 최고규범으로 새롭게 자리매김돼야 한다”고 말했다.

숙명여대 박재창(朴載昌)교수는 “헌법은 헌정주의의 상징적 문서인데 지금 우리 헌법은 종이쪽지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하고 있다”며 “미국의 수정헌법도 부칙을 고친 것이지 본문을 뜯어고친 것은 아닌데 우리는 그동안 9번씩이나 본문을 뜯어고쳤다”고 말했다.

특히 법제정을 위한 의회가 죽어 있고 법을 만드는 의원들도 불법 위법을 하고 있는 정치현실 때문에 헌법의 근본이념인 법치주의가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는 지적도 많다.

이석연(李石淵)변호사는 “여야가 세비인상에는 쉽게 합의하면서도 2개월째 원 구성을 못하고 있는 것은 국회의원의 의무불이행”이라며 “이는 정치인들이 헌법을 상징물 정도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많은 법조인은 정치인들이 의무위반행위를 할 경우 유권자인 국민이 이들을 ‘퇴출’시킬 수 있는 의원 소환제도를 도입하는 등 권력기관의 통제장치를 헌법에 반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권력구조의 개편에 앞서 국민 개개인의 존엄과 행복추구권이 구체적으로 보장되는 방향으로 헌법개정이 이뤄져야 ‘국민의 헌법’이라는 목표가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회의 길승흠(吉昇欽), 자민련 정우택(鄭宇澤)의원 등은 국민을 위한 헌법으로 기능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개헌논의 과정의 국민여론 수렴과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했다. 앞으로 개헌문제가 본격화되면 헌법을 실효성 있는 재판규범 생활규범으로 정착시켜 국민의 이익을 우선 보장하는 ‘살아 움직이는 헌법’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최영훈기자〉cyhoon@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