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78돌 특집]東亞 민족혼담긴 「회중시계」햇빛

  • 입력 1998년 3월 31일 20시 20분


1930년4월1일 동아일보사가 창간 10주년을 기념, 민족혼 살리기에 앞장섰던 한글학자들에게 증정했던 10개의 회중시계 가운데 하나가 창간 78주년을 맞은 동아일보사로 68년만에 되돌아왔다.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아청(阿城)시 조선족 소학교의 퇴직교사인 박혜옥(朴惠玉·54·여)씨는 그동안 자신이 간직해 오던 이 회중시계를 동아일보사에 기증하면서 “주인 잃은 시계를 동아일보사에 돌려주게 되니 멈췄던 시계가 다시 돌아가는 감회를 느낀다”며 감격해 했다.

이 회중시계는 일제의 민족혼 말살정책이 극에 달했던 시기, 우리말 연구와 보급에 심혈을 기울였던 한뫼 이윤재(李允宰·1888∼1943)선생이 동아일보사로부터 증정받았던 것. 시계테와 뒷면 뚜껑이 18K 금으로 만들어진 이 회중시계는 지나간 68년의 풍상(風霜)을 말해주듯 앞 유리와 시계바늘이 일부 손상된 상태지만 뒷면 안쪽에 ‘朝鮮語文功勞者’‘創刊 十週年 記念’‘東亞日報社’란 글씨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박씨는 “이 시계를 북한에 살고 있는 오빠에게서 받아 보관해 왔다”고 말했다. 박씨에 따르면 61년 북한으로 이주한 오빠(62)가 30여년만인 96년 중국에 왔다가 이 시계를 건네주면서 “절친하게 지냈던 이윤재선생의 자제로부터 받아 보관해 오던 것”이라며 “기회가 닿으면 동아일보사에 전해주라”고 했다는 것. 이윤재선생의 유족 가운데는 6·25때 행방불명된 원갑(元甲) 원주(元胄) 두 형제가 있었는데 이들중 한사람으로부터 회중시계를 건네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윤재선생은 베이징대 사학과를 졸업한 뒤 오산학교 배재고보 동덕여고보 교사를 지냈으며 27년 조선어학회의 ‘우리말사전’ 편찬위원을 맡아 일했다. 이윤재선생은 우리말 교육의 폐지와 일본어 상용(常用)을 강요하던 일제가 42년 조작한 이른바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최현배(崔鉉培) 이희승(李熙昇)선생 등과 함께 체포돼 43년 함흥형무소에서 옥사했다.

동아일보사는 1930년4월1일 창간 10주년을 기념, 이윤재선생 외에 최현배 김두봉(金枓奉) 이상춘(李常春) 김희상(金熙詳) 권덕규(權悳奎) 이규방(李奎昉) 신명균(申明均) 박승빈(朴勝彬) 등 한글학자 9명과 조선어학회에 ‘조선어문공로’ 표창을 했다.

이 시계를 동아일보사에 건네준 박씨는 지난 38년간 조선족 소학교 교사로 지내다 지금은 정년퇴임, 학교사택에서 생활하고 있다.

〈신연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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