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노사시대(下)]『공부하라』 연봉제가 두렵지 않다

  • 입력 1998년 2월 8일 20시 48분


화기애애한 ‘온정의 일터’는 기대하기 어렵다.업무량에 따라 파견 근로자가 갑자기 늘었다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동료 선후배 사이는 점차 타산적 이기적으로 변한다. 너나없이 책을 읽고 능력을 갈고 닦지 않으면 도태되는 노동시스템. 의류업체 김모대리(35)는 마음이 편치 않다. 일부 생산라인이 멈췄고 임시직 20여명이 해고당했다. 부쩍 흰머리가 늘어난 사장은 사원들에게 회사의 어려운 사정을 설명했다. 곧이어 한달씩 무급휴가를 실시한다는 방침이 시달됐다. 상여금도 줄어 연간 수입이 3천만원에서 2천5백만원으로 줄었다. 김대리의 부인은 몇푼이라도 벌려고 취업전선에 나섰다가 기술과 경험이 없어 쓰디쓴 좌절을 맛봤다. 그가 걱정하던 일이 벌어졌다. 20% 감원방침이 발표된 것. 인사과 박과장과 눈길을 마주칠까봐 겁이 났다. 김대리는 다행히 살아남아 회사측이 제시한 연봉 2천3백만원을 받아들였다. 노조는 회사의 잇따른 조치에 반발했지만 절차상의 문제를 법정에서 따질 뿐 파업 등 예전의 기세는 사라졌다. 김대리는 똑똑한 후배를 보며 1년 뒤 자신의 연봉이 깎일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는 학원에 등록하고 책을 잡았다. 김대리의 생활상은 21세기의 길목에 서있는 한국 근로자가 너나없이 겪게 될 자화상이다. ‘평생 직장’ ‘연공서열’ ‘팽창 경제’등 과거의 개념은 철저히 파괴될 수밖에 없다. ‘실업’ ‘연봉제’ ‘몸값’ ‘능력개발’ 등의 용어가 언제나 근로자를 따라다닐 것이다. 근로자는 자주 ‘몸값’을 재평가받아 수시로 해고되고 기업은 필요한 유능력자를 몇명씩 수시로 채용할 것이다. 대기업이 초겨울에 일시에 입사시험을 치러 수천명씩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것은 점차 사라진다.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 등은 극심한 경제난과 맞물려 이같은 현상을 가속화할 것이다. 실업자 수는 96년 42만여명, 97년 56만명에서 오는 3월쯤 1백만명을 넘게 된다. 정리해고에 따른 정규직 고학력자 실업, 가장(家長)실업자의 증가, 평균 실업기간의 장기화 등이 실업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경제난 실업난은 60년대부터 비효율을 감수하며 팽창 일로를 걷던 한국경제의 거품을 거둬가며 구조조정과 함께 진행되고 있어 ‘저성장 고실업’은 수년간 계속될 전망이다. 노동연구원 최경수(崔慶洙)박사는 “실업률은 2,3년간 계속 증가하다 올해보다 약간 낮은 수준에서 안정될 것”이라며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 기술이 없는 취약계층은 장기간 직업을 얻지 못하고 근로자의 직장내 생존경쟁도 치열해진다”고 전망했다. 하향 취업과 근로시간 감소로 근로자의 소득은 전반적으로 줄어 소비패턴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기업은 사원복지를 위한 지출을 삭감한다. 연봉제는 근속연수가 늘어도 감봉을 당하는 마이너스 옵션 형태가 선보일 것이다. 3D 직종도 사용자가 사람을 고르는 바이어스 마켓(Buyer’s Market)으로 변해 건설 노무직 일당이 6만원에서 5만원으로 낮아지고 있다. 미국도 구조조정기인 지난 85년부터 10년간 취약계층의 소득이 15%가량 낮아졌다. ‘충동구매’는 사라지고 알뜰한 가계를 꾸리는 ‘아나바다’(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나눠쓰기)운동은 우리의 생활 속에 자리잡을 것이다. ‘고통의 터널’을 지나면 새로운 고용시대가 열린다. 시대가 요구하는 능력을 갖춘 사람은 직장에서 인정을 받고 외국처럼 실적에 따라 수억원대의 연봉을 받을 수 있다. 기술과 창의력을 바탕으로 벤처기업이 활성화하고 신종 직종도 생겨난다. 엔지니어 프로그래머 등 기술 분야의 파견근로자는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일하며 고액의 연봉을 받을 수 있다. 여성들의 진출도 활발해지고 맞벌이가 대부분의 가정에서 일반적인 소득형태로 자리잡게 된다. 사내직업훈련 재취업훈련 등 평생 교육으로 항상 연구하고 일하는 근로자가 주류를 이룰 것이다. 〈하준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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