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호텔맨」,밑바닥서 출발…유학파,「벨맨」입사

  • 입력 1998년 1월 20일 20시 12분


“벨보이, 이것 좀 도와줘.” 정월의 찬바람이 몰아치는 겨울날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인터컨티넨탈 호텔 정문앞. 승용차편으로 막 도착한 중년의 남자가 내리며 유니폼 차림의 김유경씨(26)에게 손짓한다. “나중에 ‘보이’될 공부를 하겠다는 거냐.” 호텔공부를 하겠다고 말했을 때 호통치며 반대하던 아버지의 말씀이 퍼뜩 떠오른다. 목구멍부터 튀어나오려던 말을 꿀꺽 삼킨다. ‘저는 벨보이가 아니라 벨맨인데요.’ ‘벨보이’하면 지난해 개봉됐던 영화 ‘포룸’에서 보여준 팀 로빈스의 코믹 연기와 과장된 표정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제는 녹록하게만 볼 수 없는 직업. ‘벨보이’의 세계에도 해외유학파가 등장했다. 인터컨티넨탈호텔의 ‘벨맨’ 황선영씨(30)와 김유경씨. 둘은 미국에서 호텔경영을 전공한 ‘해외유학파 벨보이’ 1, 2호다. 미국 네바다주립대 호텔경영학과 선후배 사이로 지난해 9월부터 벨보이로 근무하던 황씨가 1월중순 프런트데스크로 자리를 옮기면서 새로 입사한 김씨에게 ‘빛나는 유니폼’을 물려줬다. 청록색 상의에 은빛단추, 검은 바지에 검은 구두, 뛰어도 머리가 흩날리지 않도록 무스로 고정한 머리. ‘벨보이’는 속칭 ‘가방모찌’로 통한다. 호텔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나와 가방을 옮겨주고 체크인이 끝나면 객실까지 안내하며 공식직함은 ‘벨맨’. 벨보이란 이름은 허드렛일을 하는 젊은 남자를 ‘보이’라고 부르던 일제시대의 산물이다. 청소원 세탁원 기물세척원 등과 같은 직급으로 연봉은 1천5백60만원. 어려운 공부를 마치고 귀국해 벨맨으로 일하게 된 동기는 뭘까. “지난해 미국에서 한국의 특급호텔 여러 곳에 입사원서를 냈습니다. 제일 먼저 연락온 곳이 이 호텔인데 하필이면 ‘벨맨’자리가 비었다는 겁니다. ‘젊은날의 고생은 돈주고도 못 산다는데 ‘백수’가 될 수는 없지…’하는 심정으로 일을 시작했죠.”(황씨) “이동통신업체와 대기업에서 입사제의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배운 걸 써먹지 못하면 뭐하러 공부했나 싶었어요. 특급호텔의 일자리는 많지 않았고요. 바닥에서 시작해 총지배인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렵니다.”(김씨) 90년대 초반 호텔전공의 해외유학이 붐을 이뤄 많은 사람들이 공부하고 돌아왔지만 유학생과 어학연수생이 넘쳐 ‘유학 프리미엄’은 사라졌다. 그새 국내 관련학과 졸업생들로 이미 웬만한 자리는 채워졌다. 여기에 실속과 미래를 챙기는 젊은 세대의 합리적 사고방식이 더해져 ‘유학파 벨보이’가 생긴 것. 하루 8시간 근무. 1시간이 채 안되는 점심시간을 제외하면 앉아 있을 시간이 없다. 큼직한 짐가방을 옮기려면 상당한 ‘완력’도 필요하다. 지나가는 손님들은 쉴새없이 질문을 던진다. “커피숍이 어디예요.” “화장실은 어딥니까.” 손님이 필요로 하는 모든 정보를 외워야 한다. 주변의 교회나 성당, 쇼핑장소로 가는 교통편과 전화번호까지. 남들 생각처럼 짭짤한 팁이 있는 것도 아니다. 팁을 거절하게 돼 있는 호텔의 규정 때문. ‘초보 벨맨’ 김씨는 “고등학교 때 친구라도 만날까봐 겁이 나죠. 같은 또래인데 외제차를 몰고와서 막말을 하는 손님을 보면 속도 상합니다. 하지만 아침마다 거울을 보고 인사연습을 하면서 다짐하죠. ‘손님이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까지 들이밀자’고.” 〈박중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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