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학번들의 인생유전]오일쇼크-광주항쟁-IMF 연타

  • 입력 1998년 1월 12일 19시 49분


대학 74학번. 어느덧 40대 중반이 돼 사회 각 분야에서 ‘중견’으로 활동하고 있고 가정에서는 한창 자라나는 자녀의 사교육비 부담에 짓눌려 사는 가장이다. 이들이 대입시험을 치르던 해에 ‘오일쇼크’가 일어나 국제원유가는 세배 이상 폭등했고 세계적인 자원파동 속에 물가는 국제통화기금(IMF)체제에 들어간 지금의 상황처럼 하늘높은 줄 모르고 뛰었다. 정치적으로는 유신체제에서 개헌논의가 금지된 가운데 박정희(朴正熙)정권의 강권통치를 위한 긴급조치가 잇따라 발표돼 살벌한 분위기가 사회 전체를 무겁게 억누르던 해였다. 격동의 역사를 살아온 74학번들이 오늘의 IMF사태를 맞는 심정은 어떠할까. 고려대 사회학과 74학번 동기생 27명의 인생 궤적을 통해 한국사회의 현주소를 들여다본다. 학창 시절부터 가난과 싸워야했던 오모씨. 고시에 도전했다 실패한 뒤 은행에 취직했다. 입사 후 2년간 집안 빚을 갚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후 다시 유학을 꿈꾸다 실패하고 공무원시험을 본 그는 현재 지방공무원 7급. 그러나 IMF의 한파 속에 공무원의 인원감축설도 나돌아 불안하다. “외형적으로 성공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직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 입학 때의 유신체제와 졸업 때의 마이너스성장 시대를 겪었다. 인생은 아직 길다.” 리비아 대수로공사 등 열사의 현장에서 해외건설 붐에 참여했던 K기업 기획실차장 이모씨. “80년 오일쇼크, 82년 이철희 장영자사건으로 우리 회사가 첫 법정관리케이스가 됐다. 3년간 승진 승급 없이 지냈지만 지금이 17년 직장생활 중 가장 힘들다.” H증권의 이모차장도 올해가 승진 연도이지만 깡통계좌를 처리하느라 매일 힘겹게 지낸다. “졸업 때는 건설회사의 인기가 높아 지원했었다. 얼마후 증권회사 인기가 더 높아졌다. 요즘은 다시 추락하고 있다. 정말 인생무상이다.” 앞만 보고 달려온 B그룹 부장 이모씨. “천직이라 믿고 뛰었는데 어느 순간 명예퇴직이나 정리해고 대상이라니….” 임원으로 승진하면 오히려 파리목숨이 될 것 같아 내심 기피하고 있다는 이씨는 부하 직원들로부터 소외당하는 것 같아 괴롭다고 털어놓았다. 모아둔 재산은 없고 당장 갈 곳도 없는 월급쟁이 신세가 너무 초라하다고 되뇐다.‘IMF 국난’은 그들의 다양한 인생 궤적에 상관없이 무차별적인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추울수록 그리운 것은 따뜻함. 동료애가 그립다. 몇년 전 간사를 맡았던 모씨가 지방발령 후 소식이 끊겨 동기모임이 중단됐다는 이들은 조만간 모임을 재개하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험난한 세파에 맞서 나갈 것을 다짐할 작정이다. 〈이원홍·권재현·하태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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