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難… 『허리띠 졸라매자』 해외여행 취소 사태

  • 입력 1997년 11월 23일 19시 53분


다음달 결혼 15주년을 맞아 남편과 함께 오붓한 해외여행을 가기로 했던 주부 이모씨(41·서울 관악구 봉천동)는 23일 그 계획을 취소했다.

너무 뛴 환율 때문에 부담을 느껴오던 터에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 이씨는 『우리 아이에게 부도난 나라를 물려줄 수 없다』며 절약의 각오도 다졌다.

12월말 5박6일 일정으로 호주를 단체관광하기로 했던 김모씨(52·대구)는 지난주말 여행사에 참가를 취소하겠다고 통지했다.

김씨는 『두달전에 예상했던 경비 1백30만원이 10% 이상 늘었다는 부담보다도 외화소비를 줄여야겠다는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라고 진지하게 말했다.

「10년 숙원」으로 친구 3명과 함께 12월15일 그리스 이집트 터키 등지로 8박9일 단체투어에 나서기로 했던 주부 남모씨(45·서울 성동구)는 최근 남편 회사의 경영이 어려워지자 못가겠다고 친구들에게 알렸다.

이처럼 경제상황 탓에 해외여행을 자제하는 사람이 부쩍 늘고 있다.

기업의 해외출장도 기간을 줄이거나 인원을 절반 정도로 축소하는 추세다.

이 때문에 여행사들에 한파가 불어닥쳤다. T여행사의 한 관계자는 『최근 미국의 컴덱스쇼에 68명을 안내했으나 환율이 폭등하는 바람에 4백20만원의 적자를 봤다』며 『예약고객이 스스로 여행을 취소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할 정도』라고 말했다.

A여행사의 한 직원도 『환율 급등으로 여행경비가 얼마나 늘어나느냐는 고객의 문의전화가 많이 오고 있다』며 『해외여행 건수가 평소보다 20∼30% 줄었다』고 밝혔다.

이밖에 K여행사는 요즘 해외여행 계약 당시보다 환율이 크게 올라 여행경비가 증가하자 고객들에게 추가요금을 납부해달라는 안내문을 일일이 발송, 적자폭을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런 상황을 맞아 국내 여행업계에서는 5,6개 업체가 곧 부도를 내고 적지 않은 중소업체들이 부도위기에 몰릴 것이라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이 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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