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무죄증거」 은닉 논란

  • 입력 1997년 11월 21일 19시 48분


검사가 재판과정에서 피의자에게 유리한 증거를 확보했다면 검찰은 이 증거를 재판부에 제출할 의무가 있는가. 피고인에게 유리한 국과수 유전자 감식결과를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하지 않는 바람에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항소심에서 풀려난 김모씨(24)씨 사건과 관련, 법조계 내부에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일선 검사들은 일단 『그럴 수도 있다』는 반응이다. 대다수 검사들은 『국과수 감식자료 역시 피해자들의 증언과 피의자 진술 등과 같은 증거의 일종이기 때문에 다른 증거로 유죄가 확실한 이상 검사가 불리한 증거를 재판부에 제출할 의무는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수사단계에서 감정결과가 나왔고 그것이 검사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면 추가수사를 하거나 공소제기 과정에서 참작하지만 이번 사건처럼 재판과정에서 불리한 증거가 나온 경우 재판부나 변호인측의 요청이 없는 이상 법정에 제출할 필요는 없다는 것. 결국 당사자주의를 택하고 있는 현행 소송구조에서 피의자에게 유리한 증거를 밝혀낼 책임은 변호인이나 재판부에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법조계 일부에서는 검찰의 이같은 주장은 공익기관으로서의 임무를 망각한 것이며 형사법상 「당사자주의」를 곡해한 위험천만한 발상이라는 반론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한 변호사는 『검사는 단순히 피의자를 벌주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찾아내야 할 공익적 의무도 지고 있다』며 『공소유지에 불리하다고 증거를 숨기는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라고 주장했다. 사인대 사인의 싸움인 민사소송의 당사자주의와 검사에게 진실을 입증할 책임이 있는 형사재판의 당사자주의는 전적으로 다르다는 것. 다른 한 변호사도 『검찰의 주장은 자신들의 지위를 「수사기술자」로 전락시키는 것』이라며 『피의자의 인권도 피해자의 인권처럼 중요한 만큼 유불리를 떠나 법정에 제출한 뒤 법원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석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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