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박대 지방대생 『가을은 절망의 계절』

  • 입력 1997년 10월 27일 19시 40분


지방대생에게 가을은 절망과 분노의 계절이다. 휴일에도 도서관의 구석진 자리를 떠난 적이 없고 휴학까지 해가며 해외어학연수를 다녀오는 등 몇년간 취업준비에 매달려도 결과는 늘 「서류탈락」뿐이다. 용케 면접까지 가더라도 합격통보는 아예 기대하지 않는 것이 마음편하다. 1백번 지원해서 일자리를 구하면 성공한 축에 든다. 25일 부산 동아대 도서관에서 만난 최성진(崔性眞·25·관광경영과 4년)씨의 가방은 증명사진 50장과 수십장의 성적증명서 어학연수증 등으로 꽉 차 있다. 그는 28개 기업에 원서를 냈으나 24곳에서 서류심사만으로 탈락했고 지난주 모처럼 면접에 응하라는 모 기업체의 통보를 받고 부리나케 서울에 왔다가 더 깊은 절망감을 안고 「상심(傷心)의 귀향열차」를 타야 했다. 『면접관이 서울소재 대학의 응시생 3명에게는 「왜 우리 회사에 지원했느냐」는 등의 질문을 던지더니 나에게는 「파업 때 당신은 어떻게 할지 영어로 얘기하라」고 묻고 대답도 듣기 전에 서류를 넘겨버리더군요』 학과성적이나 능통한 어학실력도 지방대생의 취업전선에서는 무용지물. 전남대 어문계열의 송모양(23)은 『학과성적 최상급에다 토익 9백20점이 넘는 내가 열번도 넘게 서류심사에서 탈락하는 것을 보고 다른 친구들은 아예 원서낼 용기조차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지방대 학제는 「사실상 5년제」다. 졸업을 앞둔 4학년생의 경우 어학연수 자격증취득 등을 위해 30% 이상이 휴학한 상태고 취업준비 때문에 휴학을 한번 이상 해본 학생이 80%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나마 남학생은 나은 편. 여학생은 지방과 성차별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린다. 경북대 이재정(李宰貞·22·여·천문기상학과4)씨는 『인문사회대와 자연대 여학생의 90%가 9급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며 『휴학을 하고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서 몇달째 공부하거나 전문학원에 다니는 친구들이 많다』고 털어놨다. 취업정보실 벽보에 고졸자 구인광고가 나붙는 것도 이제는 흔한 일이며 이런 자리라도 서로 가려고 아우성이다. 대졸자가 고졸자 대우를 받는 것을 거부하기에는 구직이 너무 절실한 문제다. 지방대는 취업박람회도 유치하기 힘들다. 부산 동아대 홍명곤(洪明坤)취업보도과장은 『기업에 찾아가 간곡히 호소해야 겨우 교내에서 개최하는 취업박람회에 참가한다』면서 『채용계획도 없으면서 홍보를 위해 이름만 내거는 회사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부산·대구·광주·청주〓윤종구·박정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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