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탈북 김만철씨 『배고픔이 가장 큰 고통』

  • 입력 1997년 5월 13일 13시 53분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는 선상에서의 불안감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 지난 87년 1월15일 부인과 자녀,처가식구 등 10명과 함께 50t급 철선에 몸을 싣고 `따뜻한 남쪽나라'를 찾아 `凍土의 땅' 북한 탈출을 감행한 金萬鐵씨(58.前청진병원 의사.서울 서초구 서초동). 그는 13일 서해를 통해 귀순하는 데 성공한 북한주민 안선국(49), 김원형(57)씨 일가족 14명의 해상탈출 소식을 듣고 우선 몸서리부터 쳤다. 이들 두 가족이 삼엄한 감시망을 뚫고 높은 파도와 어둠이 지배하는 망망대해를 거쳐 북한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겪었을 온갖 두려움이 스멀스멀 피부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배에 오르는 순간 목숨을 버렸습니다.발각돼 다시 끌려가기 보다 차라리 물고기 밥이 되겠다고 결심도 했습니다.기후에 따른 영향이 큰 해상탈출은 육상보다 더 위험한 점도 있죠" 金씨는 청진항을 떠난 뒤 거친 파도와 쫓기고 있다는 생각에서 생기는 공포와 벌인 5일간의 사투끝에 일본 후쿠이항에 도착했을때야 비로서 살았다는 생각을 했다며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이후 대만을 거쳐 한국에 입국했다. 金씨는 이번의 해상탈출을 식량난이 가져온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즉 자신이 탈출할 때도 주민들이 제대로 먹지 못할 만큼 어려웠던 북한의 식량사정이 계속되는 수해 등으로 더욱 악화돼 주민들의 탈출을 부추기고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배고픈 고통이 가장 큰 고통일 것입니다.처자식이 굶주리고 있는 데 당과 나라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살길을 찾아야죠." 남한생활 11년째를 맞고 있는 金씨는 먹고 사는 게 제일 중요한 문제라고 거듭 강조했다. 현재 전남 해남에서 `사랑의 집'이란 기도원을 운영하는 金씨는 다른 귀순 동료들과 의논해 안선국씨 가족 등을 위한 환영회를 마련할 계획이라며 이들의 귀순을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말했다. "정부 당국의 조사가 끝난 뒤 남쪽나라에 온 것을 환영하는 성대한 행사를 갖겠습니다.귀순자들의 모임인 숭의동지회에 환영회를 개최하자고 정식 제안할 생각입니다" 서울과 해남을 오가며 강연회 강사로, 기도원 원장으로서 눈코뜰새 없이 바쁘게 생활하고 있는 金씨는 안선국씨 가족 등을 맞을 채비를 하느라 더욱 바빠지게 됐다며 웃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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