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 3차공판]정태수씨 궤변…청문회 재탕

  • 입력 1997년 4월 14일 20시 12분


14일 열린 한보사건 3차 공판은 국회 한보특위 청문회와 마찬가지로 한보사태의 본질 및 배후 규명과는 거리가 먼 鄭泰守(정태수)피고인의 해명과 변명의 장이었다. 정피고인은 이날 시종일관 당당한 태도로 『여생을 편히 지낼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고 국가 기간산업을 시작했는데 정부의 비합리적인 결정에 따라 좌초했다』고 주장했다. 「정태수 리스트」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한보에 대한) 은행대출은 확정된 상태에서 적기(適期)에 대출받기 위해 洪仁吉(홍인길)의원 등 정치인에게 뇌물을 주었다』고 주장했다. 한보부도의 이유에 대해 그는 「음모설」을 다시 주장했다. 그는 『지난해 12월초 한보철강이 부도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아 자금사정이 매우 어려워졌는데 이는 터무니없는 것이었고 모그룹이 당진제철소를 탐내 일부러 낸 헛소문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부도 직전에 은행에서 추가대출을 해주는 조건으로 주식을 포기하라고 했을 때 무슨 음모가 있는 것 같아 쉽게 응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피고인은 『정부나 은행측은 만 하루의 여유도 주지 않고 1월22일 바로 부도를 내버리고 말았다』며 『이는 매우 엉뚱하고 비합리적인 결정이었다』고 주장했다. 정피고인은 횡령과 사기 등의 공소사실도 부인했다. 자신의 개인회사인 한보상사를 통해 대여금 형식으로 한보철강과 ㈜한보의 돈을 빼돌린 혐의에 대해 그는 『대여금이 쌓이면 돈을 내놓거나 부동산을 법인에 양도하는 방식으로 상환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보그룹 재정부 임직원들은 검찰수사에서 한결같이 『정총회장이 개인 대여금을 갚은 적이 거의 없다』고 상반되게 진술했다. 그는 또 실무직원들의 진술과 틀리는 부분에 관한 검찰신문에 대해서는 『머슴이 무얼 알겠느냐』 『그건 실무자가 한 일이라서 나는 모른다』며 앞뒤가 안맞는 발언을 거듭했다. 정피고인이 공소사실중 유일하게 인정한 것은 뇌물혐의 부분. 그는 『뇌물을 주었다고 기소된 부분은 전부 인정한다』고 진술했다. 정피고인은 그러나 검사가 『홍의원 등을 통해 은행에 로비를 한 것이냐』고 추궁하자 『대출은 이미 확정적이었고, 다만 적기에 대출받도록 요청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정치권과 관련된 더이상의 발언은 하지 않았다. 변호사의 반대신문 내용도 정치적으로 민감한 부분은 아예 피해갔고 검찰도 집요하게 추궁하지 않았다. 결국 이날 재판은 정피고인의 「원맨쇼」 비슷하게 끝났으며 앞으로도 재판을 통한 한보사태의 진실규명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이수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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