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비리 1차수사]「정태수 입」만 의존 허점투성이

  • 입력 1997년 4월 5일 20시 21분


한보비리사건에 대한 1차 조사과정에서 비자금의 규모와 사용처 등에 대해 한보그룹 임직원들의 진술이 크게 엇갈렸는데도 이를 감추려는 鄭泰守(정태수)총회장의 진술만을 근거로 검찰이 수사결과를 발표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특히 정총회장의 비자금 규모에 대해 金鍾國(김종국)재정본부장 등이 2천억원 가량이라고 진술했는데도 정총회장 등 관련자들을 상대로 이를 추궁하지도 않고 진술조서를 작성했다. 검찰은 이에 따라 재수사 과정에서 피의자와 참고인들에 대한 대질신문과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자료분석을 통해 진술내용의 진위를 재검증하는 한편 허술하게 작성된 수사기록이 외부에 유출될 경우의 파장을 우려, 수사기록 보안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4일 대검찰청에서 열린 국정조사 특위에서 검찰이 「수사기록이 법원으로 이송됐다」는 이유를 들어 기록검증을 거부한 것과 최근 검찰이 변호사들에게 수사기록을 외부에 열람 또는 유출시킬 경우 『형사처벌하겠다』며 엄포를 놓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검찰주변의 분석이다. 본보 취재진이 확인한 검찰 수사기록중 가장 허술한 대목은 비자금의 규모와 사용처. 정총회장은 1조2천억원에 달하는 유용자금의 사용처에 대해 『대부분 계열사 지원금 등 회사를 위해 썼다』고 주장했다. 다만 정총회장이 개인적으로 횡령한 것으로 드러난 2천1백36억원은 △정씨 일가의 전환사채 구입비(8백20억원) △계열사 신설과 인수비(4백37억원) △개인세금 납부(1백51억원) △부동산 구입비(78억원) 등에 사용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김본부장은 정총회장의 횡령액은 8천억원 가량이며 로비자금으로 사용한 돈만도 2천억원 가량이라고 진술했다. 또 한보의 周圭植(주규식)이사도 정총회장이 94년 이후 6백40억원의 로비자금을 사용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그러나 1차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정총회장의 진술을 근거로 횡령액 2천1백36억원중 32억5천만원이 뇌물로 제공됐으며 2백50억원은 사용처가 확인되지 않았지만 로비자금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정총회장의 「입」만을 신봉하고 나머지 임직원들의 진술은 완전히 무시한 셈이다. 또 그룹관리본부장을 지낸 鄭一基(정일기)한보철강사장 등이 『94년말 기준으로 정총회장의 차입금이 2천억원이 넘었다』며 『이를 갚기 위해 「채권채무 관리팀」을 구성했었다』고 진술했는데도 돈의 사용처에 대해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 1차 조사 당시 담당 검찰관계자는 이와 관련, 『당시 피의자나 참고인들을 집요하게 추궁할 분위기가 아니었다』며 1차 조사가 허술하게 이뤄졌음을 사실상 시인했다. 〈이수형·하종대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