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수씨 「또다른 2천억 비자금」 어디 썼나

  • 입력 1997년 4월 2일 07시 56분


[이수형·하종대·공종식기자] 한보그룹 鄭泰守(정태수)총회장이 94년 이전에 한보계열사로부터 차입금 형식으로 조성한 2천억원대의 비자금은 검찰이 1차 수사결과 밝힌 비자금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1차 수사에서 밝혀진 비자금 2천1백36억원은 모두 94∼96년 사이에 조성돼 같은 시기에 사용됐다. 따라서 94년 이전에 조성된 비자금은 지금까지 알려진 비자금과는 별개의 것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92년 대선자금의 의혹을 푸는 단서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94년 이전의 비자금 2천억원」은 한보그룹이 93∼94년 비밀리에 조직 운영한 「채권 채무관리팀」의 존재로 확인되었다. 이 관리팀은 정총회장이 한보계열사로부터 94년 이전에 빼내 쓴 차입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별히 만든 조직이다. 93년말 당시 그룹본부장으로 관리팀장을 맡았던 鄭一基(정일기)한보철강사장은 검찰에서 『정총회장에 대한 계열사들의 대여금 회수를 위해 조직했다』고 분명히 밝혔다. 조직구성도 정본부장을 팀장으로 각각 2명의 전무와 고문회계사, ㈜한보와 한보철강의 회계이사 부장 등 자금관련 핵심 임직원이 총동원되었다. 검찰이 한보측으로부터 건네받은 채권채무 관리 문건에는 『한시적으로 94년말까지 운영하며 협의사항은 대외비로 처리한다』고 적혀 있다. 채무관리팀이 정총회장의 차입금을 변제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크게 세가지. 우선 정총회장 개인 소유의 강원 동해시 소재 석회석 광산을 한보에너지가 시가보다 8백60억여원이나 비싼 9백60억원에 매입했다. 관리팀은 그렇게 해서 생긴 차액으로 정총회장이 계열사에 대한 차입금을 갚은 것으로 회계처리했다. 또 정총회장 소유의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상가 건물 1천7백87평을 시가보다 3배나 비싼 평당 1천4백만원에 한보철강이 매입토록 함으로써 정총회장이 1백60억원에 가까운 부당이득을 챙기게 했다. 이밖에 ㈜한보의 각종 건설현장에 투입된 노무자들을 10배 이상 뻥튀기 하는 방식으로 회계처리하기도 했다. 관리팀에 할당된 액수는 2천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본부장은 검찰에서 『94년말 기준으로 정총회장의 차입금이 2천억원을 조금 넘었다』고 진술했다. 이는 한보상사의 95년 결산보고서 내용과 일치한다. 한보상사의 제22기(95년 1∼12월)결산보고서에는 이월결손금(전년도에 넘어온 결손금) 1천8백86억여원이 기록돼 있다. 한보상사는 정총회장 개인소유 회사로 정총회장은 이 회사를 통해 계열사로부터 자금을 차입해 비자금을 조성했다. 문제는 이 비자금의 용도와 사용처. 이 자금이 정총회장의 사업자금이나 은행대출 로비자금 등으로 쓰였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94년 이전에는 계열사 인수도 거의 없었으며 은행 로비자금은 94년 이후 조성한 비자금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한보 비자금 수사에 관여했던 한 검찰 수사관계자는 『정총회장이 93년 이전에 거액의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그로 인해 생긴 결손을 메우기 위해 특별 재무팀을 운영하고 그를 통해 편법으로 회계처리를 한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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