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수씨 반대신문 연기요청 속셈]『입 열때 저울질』

  • 입력 1997년 3월 31일 19시 48분


31일 열린 한보특혜대출비리사건 2차공판은 당초 예상과 달리 약 4시간만에 싱겁게 끝났다. 이날 공판에서 「폭탄발언」을 할지도 모른다는 관측이 나오는 등 관심을 모았던 한보그룹 총회장 鄭泰守(정태수)피고인에 대한 변호인 반대신문이 정피고인측 요구로 다음 공판으로 미뤄졌기 때문. 나머지 피고인가운데 일부는 정피고인으로부터 받은 돈이 뇌물이 아니라는 주장을 폈지만 대부분 혐의사실을 순순히 시인하고 선처를 호소하는데 급급했다. 정피고인측은 반대신문을 연기해주도록 요구한 이유에 대해 표면상으로는 『검찰이 횡령혐의에 대해 추가기소할 것으로 예상돼 그 전에 반대신문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피고인측의 반대신문 연기는 나름대로 「계산된 행동」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오는 7일 국회 청문회에 증인출석이 예정돼 있고 검찰의 재수사가 진행중인 상황에서 변호인 반대신문이라는 중요한 기회를 섣불리 써버릴 수 없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는 것. 변호인 반대신문의 경우 피고인 입장에서는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털어놓을 수 있기 때문에 정피고인에게는 3남 鄭譜根(정보근)회장의 구속과 전재산 압류 등 검찰의 목조르기에 맞대응할 수 있는 가장 유효적절한 기회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재산의 일부를 건지거나 아들들의 추가구속을 막기 위해서는 뭔가 대응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몰려 있는 정피고인으로서는 당분간 검찰의 칼날이 어디까지 파고들지 상황을 관망하기 위해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 수 있다. 검찰의 재수사 진척상황에 따라 대응수위를 조절하는 것이 당연하고 가장 적절한 대응이 어떤 것이냐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이해득실을 따져본 뒤 결정하겠다는 의도다. 이같은 정피고인측의 계산은 검찰측의 이해와도 맞아떨어진다는 점에서 검찰과 사전협의가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청문회에서 대선자금이나 정치자금에 관한 폭탄발언 같은 돌발악재가 터질 것을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검찰로서는 청문회 이후에 정피고인에 대한 본격적인 재판을 진행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 역시 재판과정에서는 어느 정도 피고인의 발언을 통제할 수 있지만 국회 청문회는 특별한 대책이 있을 수 없는 만큼 정피고인에 대한 변호인 신문을 청문회 이후에 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물론 이같은 「사전협의설」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지만 폭탄발언을 하더라도 특별히 얻어낼 것도 없는 정피고인으로서는 이같은 검찰의 입장까지 감안했을 수 있다. 어쨌든 다음 공판으로 미뤄진 정피고인에 대한 변호인 반대신문은 여전히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라고 할 수 있다. 〈김정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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