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격 이한영 北생활]김정일 장남과 가까운 친구

  • 입력 1997년 2월 16일 19시 53분


[김세원·한정진 기자] 본명이 이일남인 李韓永(이한영·36)씨는 61년 4월 평양시 중구역 대동문아파트에서 태어났다. 부친 이태순은 53년 연형묵전정무원총리 허담전외교부장 등과 함께 모스크바에서 공부한 유학생1세대로 모스크바 종합대학에서 역학을 전공한 엘리트. 귀국후 핵무기 연구기관인 평성과학원 물리수학연구소에서 근무하던 중 같은 연구원인 성혜랑과 만나 59년 결혼했다. 서울출신인 성혜랑도 이화여고 1학년때 부친을 따라 월북, 김일성종합대학 물리수학부를 졸업한 재원이다. 영화배우였던 이모 성혜림은 소설가 李箕永(이기영)의 아들 이평과 결혼했으나 金正日(김정일)의 눈에 띄어 이혼하고 68년부터 김정일과 동거에 들어갔다. 71년에는 김의 장남인 正男(정남·26)을 낳았다. 이런 막강한 배경 덕분에 이씨는 북한의 로열패밀리로 자라났다. 72년9월 북한의 당간부들만 진학할 수 있는 만경대혁명학원에 입학했다. 김정일은 정남을 귀여워하면서도 정식부인사이에서 낳은 자식이 아니라는 이유로 정남의 존재를 비밀에 부쳐 학교에도 보내지 않았다. 이씨는 이때 정남의 유일한 말상대겸 놀이상대가 됐다. 그 때문에 김정일관저에 자주 드나들었고 한동안 함께 살기도 했다. 이씨는 김정일관저에 살며 김정일 등 북한 최고 권력층의 사생활을 누구보다도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보며 한국의 TV방송프로그램도 자주 시청하는 등 특권층 생활을 했다. 그러나 이씨는 자신의 신분을 떳떳이 밝히지 못하는 고립적인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김정일과 사이가 멀어져 모스크바에 살고 있던 이모의 권유로 이씨는 모친과 함께 76년 모스크바로 건너가 78년 모스크바외국어대학 어문학부에 입학했다. 82년9월 1년간 불어를 배우기 위해 스위스 제네바에 체류하던 중 이씨는 미국행을 꿈꿨지만 좌절되면서 82년9월 서방으로 탈출, 10월 서울에 도착했다. 귀순직후 한국에서 영원히 산다는 뜻의 韓永(한영)으로 이름까지 고쳤으나 이번 피격사건으로 그의 꿈은 무산위기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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