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간부, 不惑 넘어서도 『성적표 공포』

  • 입력 1996년 12월 22일 20시 19분


「李鎔宰기자」 『올해 회사의 영업실적이 좋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게 내가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 임원인사에서 2년째 「물을 먹은」 A상무의 말이다. 기업들이 실적을 중시하는 이른바 성과주의인사를 단행하면서 두드러지고 있는 과감한 발탁과 문책을 통한 세대교체로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올해 주요기업들의 임원인사에서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자신이 자기의 성과를 평가하는 「자기평가서」. 기업에 따라 전략목표 추진계획평가서, 목표전략합의서 등으로 불리는 이 성적표는 매출 수익 등의 수량지표는 물론 리더십 등 경영능력과 인성에 대한 상사와 부하직원의 평가까지 수치화돼 불혹의 나이를 넘어선 임원들이 졸지에 「수 우 미 양 가」의 평가를 받아야 했다. 극심한 내수부진으로 전년대비 매출 및 수익실적이 30%가까이 줄어든 한 전자업체의 B이사는 불경기를 극복하고자 열심히 뛰는 모습을 높이 산 부하직원들로부터 리더십측면에서 가장 높은 점수인 S(90∼1백점)를 받았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작성한 업적평가에서는 가장 낮은 등급인 C(60∼69점)를 매길 수밖에 없었다. 이로인해 그의 승진은 내년으로 미뤄졌다. 올해 인사에서 2단계 이상을 승진한 한 정보통신회사의 C이사는 『정보통신 시장의 확장으로 큰 성과를 올린 것이 이번 승진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던 것 같다』며 『그러나 언젠가 정반대의 결과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우리 기업세계에도 성과와 능력이 인사의 기준이 되는 것이 대세가 되고 있다. 그러나 기업에 따라서는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움직이는 경기와 시장변동의 책임까지 가혹하게 추궁하는 곳도 없지 않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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