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Global/창업부터 세계시장 노리는 슈퍼 벤처]<2>동영상 서비스업체 비키

동아일보 입력 2011-04-04 03:00수정 2011-04-04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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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서 투자받고 싱가포르에 본사… 직원 8개국 출신
비키의 직원 약 30명은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다. 미국과 중국, 일본, 중동 지역에는 콘텐츠 제휴를 맡는 직원이 1, 2명씩 근무하고 한국 사무실은 경영지원과 마케팅 업무만 담당한다. 대부분의 직원은 싱가포르에 있다. 사진은 싱가포르 본사에서 제품 개발회의를 하는 모습. 뒷줄 왼쪽부터 창업자 문지원 대표와 호창성 대표. 비키 제공
2006년 그들은 학생 부부였다. 아내는 미국 하버드대에서 교육공학 석사과정을 밟았고 남편은 스탠퍼드대에서 경영학석사(MBA)과정을 들었다. 각각 미국 동부와 서부의 명문대 유학생이었다. 겉보기엔 그럴싸했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대학 때부터 커플이던 이들은 남자가 졸업할 무렵이던 2000년 함께 3차원(3D) 영상메신저 회사를 차렸다가 실패했다. 양가 부모님께 수천만 원씩 빌렸지만 한 푼도 못 돌려줬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실패의 경험은 성공의 토양이 됐다. 이들은 2007년 ‘비키’라는 동영상 서비스 업체를 창업했다. 호창성(37) 문지원 씨(36) 부부의 얘기다.

지금 비키에는 매달 400만 명이 방문해 동영상 1억 편을 감상한다. 지난해에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에서 430만 달러(약 47억 원)의 투자도 받았다. 본사는 싱가포르에 있다. 창업자는 한국인이지만 최고경영자(CEO)는 아르메니아계 미국인이다. 약 30명의 비키 직원은 세계 8개국에서 모였다. 창업 단계부터 이들 부부의 머릿속에 ‘국적’이란 없었다.

○ 영어가 어려웠다


두 사람에게 비키의 시작에 대해 물었다. 영어를 너무 못해 콤플렉스가 있다던 문 대표가 말했다. “영어공부 하는 셈 치고 미국 드라마에 자막을 달다 ‘이걸 좀 쉽게 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던 게 시작이었죠.” 호 대표도 “우리 둘 다 영어공부에 별 방법을 다 써본 터여서 바로 사업이 되겠구나 싶었다”고 했다.
▼ “韓-印-중남미 드라마에 자막 붙이자 매달 전세계 400만명 구름같이 클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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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을 서비스하는 회사는 비키 외에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유튜브다. 유튜브는 사용자가 만든 동영상을 그대로 보여주지만, 비키는 방송국이나 영화사가 만든 전문 콘텐츠를 상영한다. 광고가 붙으면 방송사와 수입을 나누는 방식이다.

여기에 누리꾼이 만든 자막도 함께 서비스된다. 부부는 자막 서비스에서 사용자가 직접 백과사전의 내용을 만드는 위키피디아 방식을 원용했다. 자막 없는 동영상을 올리면 누리꾼 여럿이 드라마를 나눠 번역해 재빨리 자막을 만들고, 오류도 고치게 한 것이다.

○ 얄궂은 운명


이 같은 비키의 사업모델은 2006년 문 대표가 기숙사에서 떠올렸다. 이듬해 여름 그가 먼저 대학원을 졸업하면서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문 대표는 남편이 있는 캘리포니아로 이사해 7개월 동안 비키의 초기 모델을 완성했다. 호 대표는 이를 스탠퍼드대의 창업 수업시간에 발표했다. 이 수업에 패널로 참여하는 벤처캐피털리스트에게 검증이나 한번 받아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는 실제 서비스(working prototype)를 들고 온 ‘진지한 학생’으로 주목받았다. 발표를 마친 호 대표는 한 투자자에게서 25만 달러(약 2억7500만 원)를 받게 된다. 비키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2008년 9월 서비스를 일반인에게 공개할 시점에 모든 게 헝클어졌다.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고 글로벌 금융위기가 찾아왔다. 8년 전 첫 창업의 악몽이 겹쳐졌다. 그때도 이른바 ‘닷컴 버블’의 붕괴가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비키 투자자들은 사업 초기에는 ‘사용자 100만 명만 넘으면 투자하겠다’고 했지만 150만 명, 200만 명을 모아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초기 자금은 바닥을 드러냈다. 결국 개인 재산을 다시 사업에 쏟아 부었다.

○ 비키의 성공


2009년 말, 사용자는 200만 명을 넘어섰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사용자가 폭증하면서 매주 새 서버 컴퓨터를 사야 했다. 가진 돈은 다 떨어졌다. 그때 ‘꽃남 신드롬’을 낳으며 히트를 친 국내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제작회사 그룹에이트가 비키에 관심을 보였다. 수익을 나누는 조건으로 2009년 정식 계약했다. 2010년에는 미국 경기도 바닥을 찍고 회복세를 탔다. 지난해 5월 이들은 실리콘밸리 투자자들로부터 430만 달러의 투자를 추가로 받게 된다.

마침 한류가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퍼져 나가던 시기였다. 새로 계약한 드라마 ‘꽃보다 남자’와 ‘장난스런 키스’는 비키에서 큰 인기를 모았다. 첫 상영이 시작된 뒤 해당 드라마의 월 광고 매출은 각각 3만 달러(약 3300만 원)에 이르렀다. 비키는 자막을 붙인 드라마에 10분당 한 편꼴로 광고를 삽입해 수입을 올린다.

○ 세계는 다르다


비키에서 주로 상영되는 동영상은 미국이나 유럽의 영화나 드라마가 아니다. 그동안 세계시장에 진출하고 싶어도 방법이 없던 한국이나 인도, 중남미 지역의 ‘비주류’ 영상물이 메인 콘텐츠다. 누가 보겠느냐 싶지만 매월 400만 명이 이런 콘텐츠를 보려고 비키를 찾는다. 호 대표는 “세계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넓다”고 말했다.

이들은 10여 년 전 한국에서 처음 창업했을 때 ‘한국식으로 하면 안 되겠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과거처럼 모든 걸 스스로 만드는 대신 비키를 만들 땐 핵심 기술을 빼고 모조리 시장에 있는 기술을 사서 썼다. 주요 직책도 국적과 관계가 없다. CEO 라즈믹 호박히미언 씨는 미국 방송국 NBC유니버설의 콘텐츠 제휴 담당 수석부사장 출신이다. 개발팀장은 헝가리 출신 프로그래머다.

문 대표는 “‘반에서 1등 하고, 전교 1등 하고, 전국 1등 하겠다’는 식으로 한국에서 잘되는 걸 세계에 내놓고 현지화하겠다는 글로벌 전략은 지금 시대엔 맞지 않는다”며 “창업 단계부터 한국인이 아닌 세계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기획하고 글로벌스탠더드에 따라 제품을 만들어야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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