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꽃이 핀 들판에 두 청춘이 함께 있다. 벌거벗은 소년은 한쪽 다리와 팔을 굽힌 자세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고, 푸른 드레스를 입은 소녀는 무릎을 꿇은 채 소년을 향해 입으로 바람을 불어대고 있다. 아름다우면서도 기이해 보이는 장면이다. 대체 이들은 누구고 무엇 때문에 이러고 있는 …
언스트 곰브리치가 쓴 ‘서양미술사’는 1950년에 발간된 이후 800만 부 이상 팔린 세계적인 밀리언셀러다. 688쪽에 이르는 이 두꺼운 책에 여성 미술가는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1994년 독일어 개정증보판을 찍으면서 단 한 명이 추가됐는데 그가 바로 케테 콜비츠다. 대체 어떤 여성…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교수가 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의 제목이기도 한 이 질문은 고대인들도 했었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국가가 존재하는 목적을 정의의 실현에 있다고 봤다.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가브리엘 메취는 정의의 모습을 한 점의 그림(‘정의의 승리’·1651∼1653년…
칼 라르손은 스웨덴의 국민 화가다. 스웨덴 국립미술관에 가면 그의 대표작을 볼 수 있는데, 전시실이 아니라 중앙 홀 벽면에 전시돼 있다. 스웨덴의 역사와 전설을 담은 벽화 연작이기 때문이다. 미술관이 의뢰한 벽화인데도 마지막 그림은 완성된 지 80여 년이 지나 설치되었다. 무슨 사연이…
세라 비펀은 미술사에 기록되지 않은 여성 화가다. 그 대신 많은 자화상을 남겨 스스로를 기록했다. 검은색 의상을 차려입은 그림 속 화가가 우리를 응시하고 있다. 탁자 위에는 그림 도구들이 놓여 있다. 벽에 걸린 것 같은 미니어처 초상화를 그리는 중인가 보다. 그런데 양팔이 없다. 오른…
푸른색 우체부 옷을 입은 남자가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구레나룻과 양 갈래로 나뉜 북슬북슬한 턱수염이 인상적이다. 초록색 배경에는 꽃들이 그려져 있다. 그림 속 남자 이름은 조제프 룰랭. 아를 시절, 빈센트 반 고흐에게 편지를 배달해 주던 우체부다. 고흐는 그의 초상화를 무려 여섯 점…
‘생각하는 사람’을 주제로 작품을 만든 건 오귀스트 로댕만이 아니었다. 로댕과 동시대를 살았던 미국 화가 토머스 에이킨스도 같은 제목의 초상화를 그렸다. 세로로 긴 캔버스에는 실물 크기의 남자가 묘사돼 있다. 검은 정장을 입은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시선을 아래로 떨구고 서 있다. 도대…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조세희가 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나오는 문장이다. 1970년대 한국 사회의 계급 불평등을 조명한 이 소설은 19세기 프랑스 화가 오노레 도미에가 그린 ‘삼등 열차…
오스트리아 알베르티나 박물관에 가면 토끼 한 마리를 만날 수 있다. 알브레히트 뒤러가 그린 것으로, 아마도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토끼일 것이다. A4 용지보다 작은 수채화가 명화라는 사실도 의아하지만, 화가가 왜 토끼를 모델로 삼았는지, 어떻게 살아있는 동물을 이렇게 정교하게 묘…
초상화를 그릴 때는 모델의 정면이나 측면을 그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덴마크 화가 빌헬름 함메르쇠이는 뒷모습을 그렸다.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최소한의 가구만 있는 실내에서 등을 돌리고 있기 때문에 정체도 표정도 알 수 없다. 화가는 왜 모델의 뒷모습을 그렸던 걸까? 코펜하겐 출신의…
아기 예수가 요셉에게 기대어 개와 놀고 있다. 개의 시선을 끌기 위해선지, 작은 새를 움켜쥔 오른손을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개는 앞발을 들어 이에 반응하고 있다. 실타래를 감던 마리아가 그 모습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비록 누추한 살림살이지만 세상 부러울 것 없이 행복해 보이…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는데도 독학해서 화가로 성공한 이들이 있다. 프랑스에 앙리 루소가 있다면 미국에는 프랜시스 윌리엄 에드먼즈가 있다. 세관원이었던 루소는 은퇴 후 전업 화가가 되었지만 에드먼즈는 평생 은행원이었다. 돈을 다루는 직업인이다 보니 그림을 그릴 때는 오히려 문학이나 도덕적…
비교할 수 없이 힘센 상대와 싸워야 하는 상황을 빗댈 때 ‘다비드(다윗)와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성경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 다비드는 창과 갑옷으로 무장한 거인 골리앗을 맨몸으로 맞서 싸워 이겼다. 소년이 가진 무기라곤 신념과 돌멩이 다섯 개뿐. 거인의 머리에 돌이 명중한 덕에…
가슴골이 살짝 드러나는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두 손을 둥글게 모으고 서 있다. 존 싱어 사전트가 그린 이 인상적인 초상화 속 모델은 이저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19세기 후반 미국 보스턴에서 가장 유명했던 전설적인 미술품 컬렉터다. 당시 여성으로는 드물게 부와 명성, 업적까지 쌓았…
햇살이 비추는 날, 여자아이들이 밖에 나와 신나게 놀고 있다. 연초록으로 뒤덮인 나뭇잎과 아이들 얼굴은 빛을 받아 반짝인다. 덴마크 화가 페테르 한센이 그린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세상 근심이 다 사라진다. 깔깔대는 여자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그림 바깥까지 들리는 것 같다. 한센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