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식 ‘내로남불’ 공천 [김지현의 정치언락]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2월 19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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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9일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9일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형님이 꼴찌 했대요.”

지난 1월 27일 오전 9시 41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문학진 전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대뜸 이렇게 말했다 합니다. “무슨 말이냐”고 따져 묻는 문 전 의원에게 이 대표는 “후보 적합도 조사 결과 안태준(전 경기주택도시공사 부사장, 현 이재명 당 대표 특별보좌역)이 31%, 신동헌(전 광주시장)과 박덕동(전 경기도의원)이 각 11%, 형님이 10% 나왔다”고 답했다죠. 여론조사 결과상 꼴찌이니 총선에 불출마하라는 겁니다.

문 전 의원은 2월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같은 내용을 올린 뒤 자신이 민주당의 전략공천위원장인 안규백 의원에게 ‘당에서 해당 조사를 한 적이 있는지’를 물었지만 “당에선 없다. 그럼 ‘경기도’가 (했나)?”라는 답을 들었다 썼습니다. ‘경기도’는 이 대표의 비선인 ‘경기도 팀’을 지칭하는 것이라는 게 문 전 의원 주장입니다. 그는 “(나 대신 이재명) ‘친위부대’를 (후보로) 꽂으려다 보니 비선에서 무리수를 둔 것이고, 누가 봐도 납득할 수 없는 수치를 조작한 것”이라며 이후 정반대로 결과가 나온 여론조사 데이터를 들고 이 대표를 만나려 했지만, 이 대표가 만나주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2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자료를 확인하는 이재명 대표. 왼쪽은 정청래 최고위원.
2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자료를 확인하는 이재명 대표. 왼쪽은 정청래 최고위원.

원래 공천 시즌이 되면 언제나, 어느 당이든 시끄럽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번 ‘이재명의 민주당’은 유독 심한 편입니다. 이 대표 본인이 당 대표이기 이전에 가장 사법리스크가 많은 후보이다 보니 그가 ‘컷오프’ 얘기를 하면 당장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냐”라는 반발이 나오는 식이라서요.

● 직접 공천 총대 멘 당 대표
이 대표도 이를 아는지 많이 조급해 보입니다. 당 대표로선 이례적으로 총대를 메고 문 전 의원 등 출마자들에게 직접 연락해 불출마를 권고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 대표는 문 전 의원뿐 아니라 설 연휴에 앞서서는 인재근 의원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등을 각각 접촉해 불출마 또는 험지 출마를 권고했습니다. 고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의 부인으로 민주당 내에선 ‘86 운동권’ 그룹 대모로 불리던 인 의원은 이 대표를 만나 내쫓기듯 불출마 의향을 밝혔다죠.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인 의원은 자신이 불출마하는 조건으로 운동권 후배를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도봉갑 후보로 공천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이 대표가 이를 단칼에 거절했다 하죠. 당은 도봉갑에 친명계인 김남근 변호사를 전략공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인 의원이 최근 불출마를 공식 선언하는 자리에서 굳이 “김남근 변호사는 제가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도 이에 대한 불쾌감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됩니다.

22대 총선에서 불출마를 선언한 3선의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
22대 총선에서 불출마를 선언한 3선의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
원래 보통 당 대표들은 직접 공천 과정에 개입하지 않습니다. 당 대표가 이래라저래라하는 순간 “공천이 아닌 사천”이란 논란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매번 ‘바지사장’ 소리를 듣는 공천관리위원회나 전략공천위원회를 굳이 두는 이유도 사당화 비판을 피하기 위한 겁니다. 당직 경험이 오래된 한 보좌진은 “보통 당 대표들은 공관위와 전략공관위에 자기 사람을 심고, 그 사람을 통해 공천을 좌우했다”며 “물론 그것도 잘못된 것이긴 하지만, 지금 이재명 대표는 심지어 그런 ‘아닌 척’하는 시늉마저 안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한 정치 전문가는 “이재명이 마음이 지나치게 급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행태”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 대표는 본래 민주당의 주류가 아니었다. 본래 주인도 아닌 사람이 당의 승리와 정권 교체가 아닌 자기 방탄을 위한 노골적 공천을 하는 걸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층이 그대로 지켜볼 것 같나”라고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호남 민심을 잘 지켜봐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그는 “호남은 ‘선거 승리’를 최우선시한다. ‘이재명식 공천’으로 총선에서 질 것 같다면 언제든지 등 돌릴 수 있는 게 호남 민심이다. 2016년에도 그렇게 국민의당 바람이 불었다”라고 했습니다.

● 누가 누구의 사법리스크를 지적하나
이 대표는 ‘사천’ 논란은 사그라들 줄 모르고 거세지는 모습입니다. 이 대표는 설 연휴 다음날인 13일 밤엔 자신의 국회 의원회관 818호 사무실에 조정식 사무총장과 김병기 수석사무부총장 등 공천 관련 관계자들과 정성호 의원, 박찬대 최고위원 등 친명 최측근들과 모여 자정까지 노웅래, 기동민, 이수진(비례) 등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현역 의원들의 컷오프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노 의원은 2021년 돈봉투 의혹 수수 의혹으로, 기 의원 등은 라임 금품 수수 의혹으로 재판을 받고 있죠. 지도부는 이들에 대한 검찰 기소장 등을 토대로 컷오프 여부 등을 논의했다 합니다.

이 내용이 동아일보 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당장 ‘친명 심야 밀실 회의’ 논란이 터졌습니다. 공관위가 엄연히 존재하는데 왜 당 대표가 당직이 없거나 관련 당직이 아닌 지도부까지 일부 불러모아 회의를 하냐는 겁니다.

2월 14일 국회에서 22대 총선 출마 기자회견을 하는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
2월 14일 국회에서 22대 총선 출마 기자회견을 하는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
당사자인 노 의원은 “최고위원회, 공천관리위원회 등 당의 공식 회의 테이블이 아닌 비공식 논의 구조에서 특정 후보에 대한 결정적 내용의 논의를 하고 언론에 알린다면, 이는 명백한 밀실 논의이자, 이기는 공천, 시스템 공천을 부정하는 오해를 살 수 있다”고 반발했습니다. 국민의힘도 “민주당이 밀실 공천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자명하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 공천의 도덕적, 법적 기준이 이재명 대표이기 때문”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무엇보다 ‘기소돼 재판받는 의원’들에 대한 컷오프 논의가 이뤄졌다는 점을 두고 ‘내로남불’이란 지적이 빗발쳤습니다. 당내 사법리스크 1순위인 이 대표가 누구의 컷오프를 논하냐는 거죠. 이 대표는 대장동 비리,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 등 7개 사건에 10개 혐의로 수사·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 대표는 지난해 3월 자신이 기소됐을 땐 ‘기소 동료’ 기동민, 이수진 의원을 공동 욕받이로 내세웠습니다. 민주당 당헌 80조는 기소되면 당 대표 등 당직을 즉시 내려놓도록 했는데, 당무위를 열고 자신과 기 의원, 이 의원 모두 “검찰의 정치 탄압 대상자”라며 ‘셀프 구제’ 했었죠. 당시 기 의원은 당 정책위 정책조정위원장, 이 의원은 원내대변인을 맡고 있었습니다. 욕 먹을 땐 같이 욕받이로 내세우더니 이제 와서 토사구팽하는 모양새입니다.

이 대표는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을 받는 의원들에게도 직접 해명을 요구하는 전화를 돌렸다죠. 물론 돈 봉투를 실제 받았다면 그것도 문제지만, 적어도 대장동 의혹을 받는 사람이 해명을 요구할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컷오프 판단 기준은 ‘정치 탄압의 징후’”라며 “정치 탄압의 징후가 명백하면 컷오프 대상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 대표의 기소는 정치 탄압 징후가 명백하지만, 나머지 의원들은 탄압의 징후가 확실하지는 않다는 겁니다.

역시 내로남불에 강한 민주당답게 공천마저 내로남불이네요. 이재명이 당하면 ‘정치 탄압’이고, 남들은 그냥 비리입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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