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양호의 ‘마이너스 소득세’ 나도 나랏돈 받을 수 있을까[최영해의 폴리코노미]

최영해 기자 입력 2021-05-09 09:00수정 2021-05-09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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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구구 돈 풀기 대신 97조 예산으로 국민 67%가 혜택 받을 수 있다”
임종룡 이석준 최상목 김낙회 등 朴정부 경제관료 주축 이룬 정책보고서
변양호 “5년 단임 대통령제에선 대선 앞서 사회적 대타협 이뤄야 가능”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간에 국민들이 먹고 사는 문제인 경제에서만큼은 여와 야를 떠나 사회적인 대타협이 필요한 때입니다. 대통령이 경제 문제를 전부 챙길 수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유능한 사람에게 경제의 전권을 주는 것도 현실적 방안이 아닙니다. 대통령의 리더십이 있어야 해결할 수 있는 정책 과제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5년 단임 대통령제하에서는 대선과정에서 주요한 경제정책에 대해선 국민적 합의를 이뤄내는 게 중요합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을 지낸 변양호 VIG파트너스 고문이 내년 대통령 선거를 1년도 채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2022 경제정책 어젠다’라는 책을 펴냈다. ‘자유 평등 그리고 공정’이라는 부제(副題)를 단 이 책은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화두(話頭)로 던질 만한 주제를 담고 있다. 4일 변양호 전 국장을 서울 종로에서 만나 이 책이 나오게 된 배경과 차기 정부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물어봤다.

변 전 국장은 문재인 정부 들어 기획재정부가 경제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포기하고 청와대와 여당에 휘둘리면서 ‘경제의 정치화’ 바람에 친정인 기재부가 꼼작 못하는 상황에 대해 깊은 자괴감을 느끼는 대표적인 정통 경제관료 출신이다. 그는 “지금까지 기재부가 문재인 정부에서처럼 무기력한 때가 없었다”고 한탄했다.

딱딱한 주제지만 많은 국민들이 예민해하는 세금 문제를 건드리고, 과거 어느 정부도 제대로 달성하지 못한 규제개혁 문제,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대기업의 지배구조 문제 등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변양호는 “이 책은 정책을 수립하는 정책당국자와 대선에서 경제정책을 내놓을 대선후보들이 보는 것이 좋겠다는 심정으로 썼다”고 말했다. 대선이 본격화되면 정책 차별화 차원에서 대권주자들이 앞 다퉈 선점할 가능성이 있는 주제여서 공직사회 뿐 아니라 오피니언 리더들도 관심을 가질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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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집필을 총괄한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은 “문재인 정부에서 실종된 경제정책 시스템을 복원하는 것이 시급하다”며 “대선 과정에서 주요한 경제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 동아일보DB


● 화려한 경력의 박근혜 정부 장 차관들이 필진
난해한 경제정책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의 특징은 우선 화려한 필진 구성에 있다. 변 전 국장을 필두로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 최상목 전 기획재정부 1차관, 김낙회 전 관세청장 등이 저자로 참여했다. 변 전 국장을 제외한 나머지 관료들은 모두 박근혜 정부에서 장·차관급 고위 공직을 지냈다.

모피아(MOFIA·재경부와 마피아의 합성어로 경제관료의 막강한 권한을 뜻하는 조어)의 핵심인 경기고·서울대(KS) 출신으로 행정고시 19회 수석 합격한 변양호가 재경부 근무 시절 호흡을 같이 맞춘 관료들로 짜여졌다. 박근혜 정부 말기에 경제부총리로 낙점됐으나 탄핵 사태로 인사가 흐지부지된 금융위원장 출신의 임종룡은 금융과 규제, 기재부 예산실장을 지낸 이석준은 금융과 예산,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을 지낸 최상목은 경제정책, 관세청장 출신 김낙회는 세제 전문가로 관료 사회에선 해당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분야별로는 마이너스 소득세제와 포용적 경제는 김낙회, 이석준이 집필했고, 규제개혁은 임종룡, 기업 지배구조와 공정경제는 최상목이 각각 맡았다. 집필을 총괄한 변양호는 “지난해 8월부터 차기 정부의 어젠더를 발굴하기 시작해 대선주자가 누가 되더라도 한국 경제가 나아갈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중지(衆智)를 모아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 ‘마이너스(負) 소득세’, 저소득층에 국가가 돈 돌려주는 구조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마이너스(-) 소득세’ 도입 아이디어다. 문재인 정부 들어 나라 곳간을 허물면서 재난지원금을 수차례 풀었고, 차기 대권주자들 사이에선 표를 의식해 전 국민들에게 돈을 나눠주는 ‘기본소득’ 아이디어도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으로 범람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변양호 등은 ‘마이너스 세금’ 아이디어를 내놨다. 일정 소득 수준을 정해놓고 이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정부가 보조금을 주고, 반대로 이보다 더 많이 벌면 세금을 걷는 논리다.

박근혜 정부에서 금융위원장을 지낸 임종룡 법무법인 율촌 고문은 ‘규제개혁과 자유로운 경제’ 부문을 책임 집필했다. 최혁중 동아일보 기자

마이너스 소득세는 일찌감치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1962년 자신의 책 ‘Capitalism and Freedom’에서 제안한 개념이다.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생소한 것이 아니다. 2021년 현재 한국의 1인 가구의 중위(中位) 소득은 월 182만8000원이다. 지금도 기초생활 보호 대상자의 경우 중위 소득의 30% 정도를 현금으로 지급하고 있는데, 이 경우 약 월 50만원이 된다. 한정된 재원을 감안해 18세 이하에겐 최저 보장소득을 월 30만원으로 낮춘다. 18세 이하는 대부분 부모와 함께 살고 있으므로 현실적으로 성인과 동일한 수준으로 지급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만약 소득이 전혀 없다면 개인은 월 50만원씩 연간 600만원을 받게 되고, 18세 이상 성인 3명이 한 가구라면 월 150만원, 연간 1800만원을 국가로부터 ‘마이너스 세금’이라는 명목으로 돈을 받게 된다. 이 정도면 최소한의 생계는 유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국가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고 숨진 송파 세 모녀 사건 같은 불행한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변양호 등은 마이너스 소득세율을 50%로 정하고 연소득 1200만원을 기준으로 삼아 이 보다 적게 벌면 국가가 보조금을 지급하고 이 보다 더 벌면 세금을 매기는 방안을 제시했다. 가령 소득이 하나도 없는 경우 과세표준은 -1200만원이고, 여기에 세율 50%를 곱하면 내야 할 세금이 -600만원이다. 즉 국가가 600만원을 돌려준다는 것이다. 연소득이 1200만원을 넘으면 정해진 세율에 따라 국가에 세금을 내면 되는 구조다.

● 구청이나 주민센터 아닌 국세청이 일괄 지급
예산과 금융통인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은 부(負)의 소득세제와 포용적 경제 부문을 담당했다. 김경제 동아일보 기자

마이너스 소득세는 연소득이 1200만 원 이하인 사람에 대해 정부가 세금으로 돌려주자는 개념이다. 단, 기초생활보장 등 다른 사회복지 제도는 모두 없애는 것을 전제로 한다. 여러 형태의 복지제도를 통폐합하는 것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마이너스 소득세가 실제 정책으로 채택된다면 아동수당이나 노인연금 등 재산 상황과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주어지는 정부보조금은 모두 없어진다. 있는 사람이 더 받아가는 것을 막고, 이를 없는 사람에게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주자는 복지정책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인 셈이다.

마이너스 소득세의 집행기관은 국세청으로 정했다. 국세청에서 샐러리맨 월급봉투에서 매달 소득세를 또박 또박 떼듯이 소득이 없거나 적은 사람에게 반대로 국세청이 ‘마이너스 소득세’ 명목으로 ‘월급’을 지급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기존에 복지제도를 집행하는 공무원들은 할 일이 없어질 수 있다. 나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무원 조직을 일이 없는데도 그대로 두는 것은 예산 낭비일 것이다.

변양호는 “복지정책을 주관하던 공무원들은 갑자기 일이 없어지기 때문에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국세청은 소득 확인 과정에서 다소의 행정부담은 가질 수 있지만 원천징수 제도를 활용하면 대부분의 소득(이자, 배당, 근로, 연금, 기타, 퇴직소득)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으므로 국세청에서 전담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마이너스 소득세는 전 국민에게 개인별로 매달 지급되도록 하자는 주장이다.

● 97조1000억원 소요 예산 조달 어떻게
소득이 없는 사람에게 월 50만원을 주는 마이너스 소득세를 도입할 경우 필요한 재원은 97조1000억원이라고 김낙회는 추산했다. 내국인 5000만 명 중 마이너스 소득세 혜택을 받을 대상은 337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67%에 달한다. 세부적으론 육아나 가사, 학생, 노인, 심신장애자 등 비경제활동 인구가 1700만 명, 실업자 103만 명, 무급가족 종사자 118만 명,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 면세자 825만 명, 연 1200만 원 이하 소득자 525만 명이 해당한다. 국민 100명 중 67명이 혜택을 받게 되는 것이다.

거시경제 정책 전문가인 최상목 농협대학교 총장은 기업 지배구조와 공정한 경제 부문을 맡았다. 사진 기획재정부

97조원을 어떻게 조달할지는 숙제지만 각종 인적 공제를 없애고 근로소득 공제를 축소하는 세제 개편이 뒤따라야 한다. 그리고 현금으로 지원되는 대부분의 복지제도는 전면 폐지하거나 과감하게 축소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지금은 별도로 각각 지원되는 기초연금을 비롯해 생계급여, 아동수당, 영유아 보육료, 유아교육비 보육료 지원, 구직급여, 모성보호육아지원, 산재보험급여, 맞춤형 국가장학금 지원 등을 과감하게 없애거나 축소함으로써 재원을 조달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여기에 만약 필요하다면 한국의 현행 부가가치세 10%(OECD 평균은 18.5%)를 15%로 올리게 되면 40조원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고 주장했다. 변양호 등은 사회 각 부문별로 재조정할 수 있는 재원을 구체적으로 예시해놓았다. 오랫동안 정책을 설계하고 집행한 고위 관료들이 작성한 만큼 물정을 모르는 교수들이 한 추계와는 달리 집행 가능한 현실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 대선주자와 토론할 수 있을 것
책에서는 마이너스 소득세 외에도 기업규제 완화를 통해 경제적 자유를 높이고, 공정한 경쟁 환경을 만들기 위해 재벌의 기업지배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역설했다. 저자들은 “재직 중 이루지 못한 비전의 뒤늦은 정리이기도 하고 부족했던 성과에 대한 반성일 수도 있다”고 토로했다.

세제 전문가인 김낙회 전 관세청장은 ‘마이너스 소득세’의 골격을 짜고 이와 관련된 개편안을 마련했다. 홍진환 동아일보 기자

변양호는 “복지제도의 정책 프레임을 전면 개편하는 과정에서 이해관계가 얽힌 공무원들의 저항이 거셀 것”이라며 “국세청이 복지 정책을 주관하게 되므로 자기 부처의 예산 사업을 줄이는 과정에서 관련 부처와 공무원들이 사생결단으로 반발할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낭비 없는 튼튼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해선 복지체계의 대수술이 필요하므로 대통령의 결단으로 부처 이기주의를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프리드먼이 1960년대 부의 소득세 개념을 내놓았을 때는 미국 경제가 장기 활황 국면이라 누구나 원하는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고, 복지제도가 근로의욕을 해친다는 의식이 팽배했다”며 “4차 산업혁명을 계기로 기본소득 논쟁이 불붙은 만큼 지금 시대적 상황은 이같은 정책적 전환을 본격적으로 검토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중심제에서 대통령의 역할이 워낙 중요하기 때문에 대선주자라면 누구든 이 책의 아이디어를 놓고 토론할 수 있다”며 “새로운 경제의 틀과 사고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시대적 소명을 갖고 책을 썼다”고 덧붙였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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