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근무와 초동 조치, 시설물 관리 등 대북 경계의 핵심 요소들이 이번 ‘오리발 귀순’ 사건에서 어느 하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도 나타났다. 합동참모본부는 23일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환골탈태의 각오로 보완 대책을 강도 높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군 내부에서는 과거 대책을 ‘재탕’하는 것만으로 경계 실패를 막을 수 없다는 회의론까지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6일 오전 1시 5분경 강원 고성군 통일전망대 인근 해안에 도착한 A 씨는 오전 1시 40분경 해안철책 아래의 배수로를 통과하기 전까지 해안 CCTV 4대에 5번 포착됐다. 상황실에 경보가 2차례 울렸지만 당시 CCTV 여러 대를 보고 있던 감시병은 바람으로 인한 오작동으로 판단해 이를 추적 감시하지 않았다고 합참은 밝혔다. A 씨는 각 CCTV에 10초 이내로 포착됐다. 감시병이 이를 제대로 확인했다면 A 씨가 군사분계선(MDL)에서 약 8km 떨어진 민간인통제선(민통선) 인근까지 내려오는 상황을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또 A 씨가 통과한 직경 90cm, 길이 26m의 배수로는 2005년 동해선 철로공사 때 설치됐으나 22사단은 이 시설물의 존재 자체를 몰랐던 것으로 드러났다. 합참 관계자는 “부대 관리 목록에 없는 배수로 3개를 발견했다. 이미 훼손됐던 것으로 추정한다”고 했다. 지난해 7월 강화도 ‘탈북민 월북’ 사건 이후 배수로 점검 지시가 내려졌지만 이 부대는 배수로 3개를 누락한 채 “점검을 완료했다”고 보고했다.
합참은 “합참의장 주관 작전지휘관 회의를 개최해 전 부대 지휘관과 경계작전 요원의 기강을 확립하고 22사단 임무 수행 실태를 진단하겠다”고 밝혔다. 배수로와 수문도 전수 조사하겠다고 했다. 국방부는 22사단장 등 지휘계통 관계자 문책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지난해 11월 같은 부대에서 ‘월책 귀순’이 발생한 뒤 대책과 흡사하다.
A 씨는 조사 과정에서 “해금강으로부터 헤엄쳐 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합참은 A 씨가 6시간 동안 동해를 헤엄쳐 왔다고 했다. 잠수복 안에 두꺼운 옷을 입어 부력이 생성됐을 가능성이 있고 연안 해류가 북에서 남으로 흘렀다는 것. 또 A 씨가 어업 관련 부업에 종사해 “물에 익숙한 사람”이라고 했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A 씨가) 군 초소에 들어가 귀순하면 ‘북한으로 다시 돌려보낼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며 “군인들이 무장하고 있어 총에 맞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고 했다. 2019년 정부는 동료 승선원 16명을 살해하고 도피하다 군에 나포된 북한 주민 2명을 북송한 바 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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