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는 그만” 文정부가 檢개혁에 목매는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7일 13시 43분


코멘트

조국 사태로 文 정부와 尹 검찰 완전 결별

2019년 하반기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조국 사태’는 문재인 정부에게 ‘우려’가 ‘현실’이 된 일대 사건이었다. 정권 창출과 적폐청산 과정에서 밀월관계를 형성해온 검찰을 과연 언제까지 믿을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있었는데 그런 우려가 예상보다 빨리, 그것도 가장 믿었던 윤석열 검찰총장으로부터 불의의 일격을 당했기 때문이다.

조국 사태는 검찰이 먼저 수사에 나선 것이 아니라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된 조국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진행된 언론의 검증 과정에서 먼저 촉발됐다. 조 전 장관의 딸이 고등학교 재학 시절 단국대 의대 영어 논문에 제1저자로 부당 등재됐다는 논란이 언론보도로 알려지고 사모펀드 비리 등 조 씨 일가 비리가 국민적 의혹으로 확산되자 사태 추이를 주시하던 검찰이 전격적으로 수사를 개시한 것이었다. 물론 이 결정을 내린 사람은 검찰 수사를 지휘할 법적 권한이 있는 윤 총장이었다.

윤 총장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답변을 통해 조 전 장관 일가에 대한 수사 착수가 부득이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윤 총장은 “제가 조 전 장관과 개인적으로 친밀하지 않지만 총장 임명을 전후해 검찰 인사도 같이 여러 차례 많이 논의도 했다”며 “이 수사를 해야 되는지, 말아야 되는지에 대해 개인적으로 저도 인간이기에 굉장히 번민했다”고 의원 질의에 답했다.

2019년 8월 당시 조 전 장관의 자택까지 치고 들어온 검찰의 대대적인 압수수색에 정권 핵심부는 크게 당혹해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일각에서는 ‘윤 총장이 이렇게 배신할 수 있는 것이냐’는 반감도 있었다고 한다. 진작부터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검찰개혁을 국정과제로 제시한 문재인 정부로서는 적폐청산이 마무리되면 검찰을 토사구팽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는데 조국 사태는 현 정권과 검찰의 결별을 앞당긴 결정적 계기가 됐다.

조국 사태는 문 대통령이 신임한 조 전 장관이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군에서 멀어지게 하는 등 정권의 핵심에 심대한 타격을 안겼다. 적폐청산 수사로 더 날카로워진 검찰의 칼날이 언제든 ‘살아 있는 권력’으로 방향을 틀 수 있다는 우려가 조국 사태로 현실이 되자 검찰을 이대로 뒀다간 큰 일 나겠다는 위기감이 정권 내부에 급속히 퍼졌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역대 정권의 흥망성쇠를 보면 5공 이후 모든 정권이 예외 없이 임기 말이나 차기 정권에서 권력형 비리로 검찰 수사를 받고 정권의 핵심이 붕괴되었다. 군사반란으로 불법 집권한 전두환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 자신의 안위를 가장 잘 지켜줄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친구인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후계자 자리를 물려줬지만 5공 비리가 터지면서 동생 전경환 씨와 장세동 전 국가안전기획부장 등 친인척과 측근 47명이 검찰 ‘5공 비리 특별수사부’의 조사를 받고 구속됐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결국 김영삼 대통령이 추진한 ‘역사 바로세우기’를 계기로 12·12 군사반란과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검찰에 구속돼 유죄가 확정됐다.

평생 민주화에 헌신한 김영삼,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은 본인들이 검찰 수사를 직접 받지는 않았지만 주변 관리를 잘못해 아들이 검찰에 구속되는 아픔을 겪었다. 임기 말 외환위기를 초래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소통령’으로 불린 차남 김현철 씨의 국정 개입 사건으로 현철 씨가 구속됐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홍업, 김홍걸 두 아들이 비리 사건에 연루돼 임기 말에 구속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 시절 대검 중앙수사부의 수사를 받던 도중 서거했고,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은 현 정부의 적폐청산 수사로 검찰에 구속됐다.

검찰은 이처럼 우리 헌정사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 정권 사정(司正)을 도맡아 처리하면서 결과적으로 권력이 점차 강화됐다. 검찰은 5, 6공화국까지만 해도 청와대에 종속돼 힘이 약했지만 법치주의가 실질적으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김영삼 정부 때부터는 공직기강 다잡기나 전 정권 청산에 검찰이 절대적 기여를 하면서 검찰총장에 대한 대통령의 신임과 더불어 정부 내에서 차지하는 검찰의 위상이 자연스럽게 높아졌다. 검찰 권력의 강화는 권위주의 체제가 법치주의로 대체되면서 형성된 일종의 ‘민주화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지금 여권이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검찰청을 없애고 기소권만 갖는 공소청을 만드는 법안까지 발의한 것은 역대 정권의 실세들이 비리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구속된 많은 전례를 문재인 정부에서는 답습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하는 시각이 많다. 한 전직 검사장은 “대통령 임기 말로 가면서 정권의 힘이 떨어지면 정권 초기에는 나오지 않는 실세들에 대한 비리 제보가 검찰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며 “여권이 검찰개혁으로 검찰의 권한을 축소하려고 하는 데에는 수사기관의 속성상 정권 비리를 파헤칠 수밖에 없고 또 그래왔던 검찰에 대한 두려움이 근원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