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북미 위기감에 ‘플랜 B’ 만지작…‘제재 완화론’ 회귀하나

  • 뉴시스
  • 입력 2019년 12월 23일 21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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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정상회담서 중·러 유엔 대북제재 해제 결의안 논의
결의안, 남북 철도·도로 연결 사업 제제 대상 해제 포함
靑 "유엔 결의안 주목…엄중한 상황 속 국제 노력 필요"
금강산 재개 뜻 막혔던 文대통령…남북철도 돌파구 주목

문재인 대통령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한중 정상회담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 제출한 대북제재 완화 결의안과 관련해 논의했다. 대북제재 완화론이 좌초 위기에 놓인 북미 비핵화 협상을 살려낼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11시35분(한국시각 오후 12시35분)부터 오후 12시25분까지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 1층 동대청에서 시 주석과 한중 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위한 협력 방안 등을 논의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에서 벗어난 실질적인 한중 관계 정상화 방안부터 교착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북미 비핵화 대화 재개 방안까지 폭넓은 의제들이 테이블에 올랐다.

시 주석은 비공개 회담에서 “한반도의 긴장 상황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중·한은 북·미가 대화의 모멘텀을 이어나가게 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며 한반도의 평화에 일관된 지지를 보낸다“고 말했다고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이 기내 브리핑에서 전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북·미 간 대화 모멘텀을 살려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화답했다.

문 대통령은 앞서 모두 발언에서도 ”북미 대화가 중단되고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는 최근 상황은 우리(한중) 양국은 물론, 북한에게도 결코 이롭지 않다“며 ”모처럼 얻은 기회가 결실로 이어지도록 더욱 긴밀히 협력해가길 희망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한중 정상은 이후 비공개 회담에서 북미 대화의 동력을 살리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해서 논의를 이어갔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전했다.

청와대 안보실 관계자는 베이징에서 청두(成都)로 이동하는 공군 1호기 내에서 기자들과 만나 ‘최근 중국과 러시아의 유엔 대북제재 완화 결의안 초안을 제출한 것과 관련해 한중 정상 간에 얘기가 오갔는가’라는 질문에 ”안보리 결의에 대해서 얘기가 있었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대화 내용을 말씀드릴 수는 없다“면서도 중러의 유엔 대북제재 완화 결의안에 대한 개괄적인 정부 입장을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 결의안에 대해서 저희도 주목하고 있다“며 ”현재 한반도의 안보 상황이 굉장히 엄중한 시점에 있는 상황 속에서 다양한 국제적 노력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싱가포르 합의사항이 북미 간에 동시적, 병행적으로 이행돼야 한다는 것에 저희도 공감하고 있다“면서 ”그래서 앞으로 긴밀하게 국제사회와 공조 하에 이 북미 대화를 실질적으로 성과를 도출해낼 수 있도록 끝까지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시적·병행적(simultaneously and in parallel)’ 방식은 미국이 주장하는 단계적 비핵화 방식을 뜻한다는 점과 국제사회의 공조를 강조한 점 모두 미국 주도의 비핵화 대화 틀을 벗어날 수 없다는 현실론적 인식을 보여준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계속해서 ‘동시적·단계적‘(simultaneously and phased)’ 방식을 고수하고 있어 비핵화 접근법에서부터 미국과의 큰 견해차를 보이고 있다.

북한이 공언한 비핵화 협상의 연말 시한이 다가오는 가운데 아무런 진척이 없자 중국과 러시아가 국제사회에 대북제재 완화의 필요성을 공론화 하기 시작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지난 16일 유엔 안보리 이사회에 대북제재 완화 결의안 초안을 제출했다. 결의안에는 ‘남북 간 철도·도로 협력 프로젝트’를 제재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외에도 해외 파견 북한 노동자를 송환하도록 한 제재 결의안(2397호) 해제, 수산물·섬유를 북한의 수출 금지 품목으로 확대(2371호·2375호)한 제재 결의안의 해제 요구가 포함됐다.

이 중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남북 철도·도로 협력 사업을 유엔 제재 대상에서 제외해달라는 내용이다.

남북 철도·도로 협력 사업은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방안으로 판문점 선언과 평양 선언에서 남북 정상이 두 차례 합의한 바 있다. 지난해 12월 착공식까지 마치고도 미국의 제재에 가로막혀 한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대북제재 해제 결의안을 유엔 안보리에 제출한 이후 국제사회에 공론화를 시키는 데 까지는 성공했다. 다만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 의장국인 독일이 중러가 제출한 결의안에 공개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러 또한 결의안 통과를 염두에 뒀다기보다는 북미 비핵화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틈을 이용해 한반도 문제에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공동행동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에 보다 무게가 실린다. 중러는 2017년 새로운 비핵화 해법의 일환으로 ‘중러 공동행동계획’을 발표하며 공동 전선을 구축한 바 있다.

‘쌍중단·쌍궤병행’이라는 중국식 해법과 3단계로 나눠서 비핵화를 이뤄야 한다는 러시아식 해법의 공통점을 모은 것이 중러 공동행동계획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공언한 ‘새로운 길’과 개연성이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북한이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을 완전히 접고 중국·러시아와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시도할 수 있다는 게 북한의 ‘새로운 길’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2020년 정세분석 기자간담회에서 ”북한이 언급한 새로운 길은 가변적일 수 있지만 미국을 배제하고 자력갱생을 기반으로 중국·러시아와의 관계 속에서 국제사회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의식할 수 밖에 없는 문 대통령이 중국과 러시아의 대북제재 해제 결의안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한 차례 국제사회에 ‘조건부 대북제재 완화론’을 공론화하다가 좌절을 경험한 바 있다.

평양 방문 직후 유럽 5개국 순방에서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기에 나선다면 금강산 관광 재개 등 국제사회가 제재 완화에 나서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했었지만 외면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에 따라 인도적 지원 차원에서의 식량지원 선에서 만족해야 했다.

청와대가 중국과 러시아의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해제 결의안 제출 상황을 ”주목하고 있다“는 수준으로 언급한 데에는 우리 정부가 국제사회에 우호적인 분위기가 먼저 조성되기 전에 움직이기 어렵다는 이러한 현실에 기반한 고민이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반면 제재완화 일환으로 추진했던 금강산 관광 재개 카드가 좌절된 이후 남북 철도·도로 연결 사업이 북한의 ‘새로운 길’에 대비하는 ‘플랜 B’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함께 읽힌다. 예측 불가능한 한반도 정세 속에서 문 대통령에게 외교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열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문 대통령이 그동안 비핵화 문제는 협상 당사자인 북미를 중심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을 견지해 온 것과 모순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미국이 한미일 3국은 물론 대북제재에 대한 국제사회의 긴밀한 공조 틀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도 부담 요소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중 정상회담이 현재의 북미 대화의 방향을 바꾼다는 것은 맞지 않다“면서 ”현재 북미 대화의 모멘텀을 계속 이어간다는 표현이 맞다. 한중 정상이 거기에 대해서 의견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청두(중국)·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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