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비건, 北 회동 불발 ‘빈손’ 출국…북미 관계 격랑 속으로

  • 뉴시스
  • 입력 2019년 12월 17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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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대표, 2박3일간 정부·학계 등 광폭 행보
北에 "데드 라인 없다" 협상 제안해지만 무응답
중·러, 유엔에 대북제재 일부 해제 결의안 제안
"기회의 창 닫혀가…北, 새로운 길 선언할 듯"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북한에 만남을 전격 제의하며 교착 상태에 빠진 북미 관계의 반전을 시도했지만 성과 없이 한국을 떠났다. 여기에 중국과 러시아가 대북 제재 일부 해제를 담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초안을 제안하며 북미 관계는 또다시 격랑에 휘말릴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비건 대표는 2박3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17일 오후 다음 목적지인 일본으로 출국했다. 비건 대표는 조세영 외교부 1차관 예방, 한미 북핵 수석대표 협의, 문재인 대통령 예방, 김연철 통일부 장관과 오찬, 평택 주한미군사령부 방문, 한미 송년 리셉션, 대학 강연 등 분주한 일정을 보냈지만 끝내 북미간 ‘판문점 회동’의 결실을 보지는 못했다.

비건 대표는 지난 16일 한미 북핵수석대표회의 직후 약식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 협상 파트너에게 직접적으로 말한다. 이제 우리 일을 할 시간이다”며 “우린 여기 있고, 북한은 우리에게 접촉할 방법을 알고 있다”고 회동을 전격 제의했다.

앞서 미국은 뉴욕 채널을 통해 북한에 회동을 제안했지만 북한이 응하지 않자 서울에서 공개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가에서는 사실상 뉴욕 채널을 비롯해 북한과 대화 채널이 중단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비건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도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구축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이루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나가겠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김연철 통일부 장관과의 오찬에서는 “타당성 있는 단계와 유연한 조치를 통해 균형 잡힌 합의에 이를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북한은 묵묵부답이었다. 비건 대표가 한국에 머무는 동안에는 조선중앙통신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 사망 8주기를 맞아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고 보도한 것이 전부였다. 비건 대표의 회동 제안은 북한이 요구하는 구체적인 셈법 변화 없이 이뤄진 데 따른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박원동 한동대 교수는 뉴시스와 통화에서 “북한이 원하는 경제 제재 해제나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 등과 같은 메시지 없이 만남을 제의하면서 북한이 반응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여러 가지 노력이 닫히고 북한은 다음 주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를 통해 새로운 길로 나갈 가능성이 크다. 기회의 창이 닫혀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북한은 지난 7일과 13일에는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시험장으로 불리는 서해 위성발사장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엔진 시험으로 추정되는 ‘중대한 시험’을 두 차례 진행하며 대미 압박 수위를 높이며 ‘새로운 길’을 예고하고 있다. 북한은 이달 하순께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중대한 결정을 진행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특히 비건 대표의 방한 기간 중 중국과 러시아가 유엔 대북 제재 일부 해제를 골자로 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초안을 제의하며 북한의 강경 노선에 힘이 실리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결의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 제재를 위한 국제 공조에 균열이 생기며 대립 구도가 선명해졌다는 평가다.

중국과 러시아는 16일(현지시간) 유엔 대북 제재 일부 해제를 골자로 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초안을 제안했다. 결의안에는 남북 간 ‘철도·도로 협력 프로젝트’를 제재 대상에서 면제하고, 모든 북한 노동자들을 본국으로 송환시키도록 한 제재를 풀어야 한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미 국무부는 당장 “대북 제재 완화를 고려할 시점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미국의소리(VOA)에 따르면 미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중국과 러시아의 결의안과 관련해 “북한은 비핵화 관련 논의를 거부하고 금지된 대량살상무기와 탄도 미사실 실험을 계속 유지하며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위협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박원동 교수는 “중국과 러시아의 제안은 미국의 거부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며 “북한에 힘을 실어줬다는 해석에 더해 중국과 러시아 역시 북한에 금지선을 넘지 말라고 경고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관건은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 등을 통해 금지선을 넘느냐, 안 넘느냐다. 북미 대치 상황은 연말을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한편 비건 대표와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이날 함께 김포공항으로 이동하며 한미 수석대표간 협의를 진행하는 등 출국 직전까지 긴밀하게 협의를 진행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비건 대표는 일본에서 다키자키 시게키(瀧崎成樹)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 등과 만난 후 19일 미국으로 돌아갈 것으로 알려졌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날 ‘2020 아산 국제정세전망’에서 “내년에 북한이 악화되는 상황 쪽으로 선택하면 고강도 대미 정책과 고강도 대남 정책을 펼치는 상황도 목도할 수 있다”며 “미국이 양보를 안 하면 힘으로 북한이 보여주려 할 것이다. 강도 높은 도발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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