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식량난에 돼지열병까지…하위계층 ‘직격탄’

  • 뉴시스
  • 입력 2019년 6월 1일 06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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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OIE에 자강도 협동농장서 발병 보고
"돼지사육기반 붕괴될 수도"…내부엔 숨겨
연이은 가뭄·홍수 1000여만 명 식량난 직면
"북, 준조세 발달…하층 부담 전가 가능성"
"식량 사먹을 돈 없는 사람 점점 늘어날 것"
남북 교착 속 北 당국 ASF 방역 협력 주목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에 백신도 없는 가축 전염병까지 들이닥쳤다. 북한식 표현으로 ‘사회주의 수호전의 전초선’이라고 여겨지는 농업 분야의 만성적 위기에 축산업 기반 붕괴를 야기할 수 있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병하면서 식량난은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 피해가 하위 계층에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북한은 지난달 30일 세계동물보건기구(OIE)에 ASF 발병 사실을 공식 보고했다. 자강도 우시군 북상 협동농장에서 발생, 25일 확진 판정했다는 것이다. 북한은 보고 다음날인 지난달 31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통해 ASF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시켰다.

신문은 ‘높은 발병률, 다양한 전파경로’, ‘아직까지 찾지 못한 효과적인 방지대책’, ‘심각한 후과’ 제하의 기사를 통해 ASF 바이러스가 전염성이 강하고 저항력이 커 예방이 쉽지 않다고 밝혔다. 특히 중국에서는 ASF로 100여만 마리의 돼지를 도살했다고 전하며 “감염되는 경우 돼지사육기반이 붕괴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신문은 그러나 자강도의 협동농장에서 ASF가 발병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이 바이러스를 치료할 수 있는 백신이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고 강조하면서 예방을 위해 ‘발병국’ 중국에 ‘인접한 나라’에서도 검역소를 설치하고 있다는 정도로만 보도했다. 자강도에서 하고 있는 이동제한 및 방역 조치를 ‘예방 활동’으로 포장한 셈이다.

이는 ASF 발병 사실을 최대한 숨겨보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가뭄에 따른 곡물 부족에 치사율 100%의 전염병이 발생한 사실까지 알려질 경우 정권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의 지난해 곡물 생산량은 2009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 올해 136만t의 곡물 부족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인구의 40%에 달하는 1000만여 명이 식량 부족 사태에 직면했다는 게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의 분석이다. 여기에다가 북한은 최악의 봄 가뭄을 겪고 있어 식량 사정이 나아질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올해 1월부터 지난달 상순까지 북한의 전국 평균 강수량은 54.4㎜로 1982년 이후 가장 적게 내렸다.

북한은 관영매체를 통해 “금보다 쌀이 더 귀중하다”고 선동하며 증산을 독려할 정도로 식량난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유엔에 식량 지원을 공식 요청했을 정도다. 이런 와중에 축산업에 막대한 피해를 발생시키는 전염병까지 발병한 것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전염성이 강한 열병인 데다가 백신도 없는 상황”이라며 “북한은 최근 축산산업에도 공을 들여왔으나 제재 등의 원인으로 시설이 열악하다. 다른 국가에 비해 피해가 더 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여전하다는 점도 일련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지난 2016년부터 북한에 대한 포괄적 제재를 단행해왔다. 북한에 들어가는 자금줄을 막아 핵 개발을 막겠다는 취지였다. 주민 생활에 부정적 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밝혔으나, 핵 무력이 고도화될수록 제재는 강경해지면서 자연스럽게 민생 분야도 제재 영향을 받게 됐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식량난의 부담은 하위 계층이 떠안게 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양문수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과 같이 준조세가 발달된 사회에서는 여러 준조세의 형태로 하층부에 (부담을) 전가할 수 있다. 모든 저소득국가의 공통점”이라며 “전반적으로 힘들어지는 계층들이 나올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제재가 광업과 제조업을 겨냥하고 있어 초기에는 파장이 크지 않으나, 3년 정도가 지속되면 그 영향이 비료와 연료 등 농업 관련 분야에까지 미치게 되고, 결국은 주민들의 전반적 소득 감소 문제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그는 장마당의 쌀 가격이 하락세를 보이는 것도 공급이 충분해서가 아니라 전반적 소득 감소로 구매력이 떨어지면서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밀가루와 강냉이 등으로 수요가 옮겨갔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양 교수는 “현재의 (식량부족) 국면은 이제 시작”이라며 “식량을 사 먹을 돈이 없는 사람은 점점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 당국이 움직일지도 주목된다. 북한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남측과의 교류·협력을 전면 중단한 상태다. 정부의 인도적 지원 추진 움직임에 ‘부차적’인 ‘생색내기’라고 비난하며 호응하지 않고 있다. 그러다 지난달 31일 ASF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남북 협력을 추진하자는 정부의 제안에 “내부적으로 검토 후에 관련 입장을 알려주겠다”며 움직임을 보였다.

정부는 ASF의 북한 내 확산 방지 못지않게 남북 접경지역을 통한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북측과 협력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통일부는 “북측과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마련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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