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베트남 데탕트…50여년전 하노이 상공서 공중전

  • 뉴스1
  • 입력 2019년 2월 14일 11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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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북베트남에 조종사 파병·호찌민 게릴라전 차용
美-베트남, 전쟁겪고도 화해…신흥시장국으로 우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 싱가포르 센토사 섬 카펠라 호텔에서 140여 분에 걸친 단독·확대정상회담과 업무오찬을 마치고 정상회담 공동합의문 서명식 후 떠나고 있다. (싱가포르통신정보부 제공)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 싱가포르 센토사 섬 카펠라 호텔에서 140여 분에 걸친 단독·확대정상회담과 업무오찬을 마치고 정상회담 공동합의문 서명식 후 떠나고 있다. (싱가포르통신정보부 제공)
이달 말 베트남에서 열리는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비핵화와 상응조치 협상 결과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지만 이번 2차 회담이 냉전의 잔재 청산과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구축을 향해 또 다른 족적을 남길 화해의 장이 될 것이란 기대도 높다.

북미는 전후 7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제재와 봉쇄, 적대로 대표되는 세계사적으로 이례적인 관계를 지속했다. 그러다 지난해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처음 만났고, 이번에 260일만에 재회해 1차 때 합의했던 Δ관계 정상화 Δ평화체제 구축 Δ비핵화 Δ신뢰구축에서 구체적 성과 도출에 나선다.

1차 싱가포르 회담에서 두 정상이 얼굴을 맞댄 것은 채 4시간이 되지 않았다. 서로가 물밑에서 했던 약속을 둘러싼 인식 차이는 북미 협상이 수개월 간 교착되게 한 불씨가 되기도 했다. 2차 회담이 북미 간 신뢰 구축에 도움이 돼 만남의 문턱이 낮춰지도록 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래서 베트남 개최의 의미는 크다. 싱가포르는 북미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제 3국일 뿐 역사적 의미는 약했다. 하지만 베트남은 ‘제2의 한국전쟁’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전쟁을 겪었다. 1964년 베트남에 미국이 군사 개입을 본격화한 데 이어 이듬해에 한국이 파병을 결정하자, 북한은 공군 조종사와 심리전 전문가, 각종 물자를 보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논문에 따르면 베트남전쟁의 주전장은 남베트남 지역이었지만 미국은 북베트남 지역에 공중폭격을 감행했다. 북베트남은 공군력이 절대적으로 열세였다. 동중국해상의 미 항공모함의 함재기와 태국과 남베트남 공군기지의 전투기와 폭격기, 괌의 B-52가 폭격을 전개했다.

북한조종사들이 모는 미그-17 전투기와 미군 전투기는 수차례 하노이 상공과 인근 하이퐁 해상에서 공중전을 벌였다. 김일성은 당시 ‘하노이 상공을 평양처럼 방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북한 공군의 전과는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베트남 전쟁은 1960년대 말 한반도 안보상황과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북한의 대남 도발행위는 한국이 파병을 한 1965년부터 증가해 1967~1968년에는 최고조에 달했다. 특히 1968년 ‘1.21사태’와 미 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 나포사건은 베트남 전쟁의 게릴라전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2007년 비밀해제 된 미중앙정보국(CIA)의 1968년 문서에 따르면 김일성은 미국은 베트남에 과도하게 개입돼 있어, 북한 군대가 비무장지대에서 국지도발을 벌여도 미국이 반격하지 못할 것으로 믿었다. 전후 소련의 지원으로 대공 방위력이 개선된 점도 자신감으로 작용했다.

이 같은 도발은 북베트남을 돕기 위한 관심전환(diversionary) 전략의 성격도 띄고 있었다. 북한의 목적은 한국군대를 옭아매 파병을 제한하고, 한반도에 제2의 한국전쟁이 발발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키우는 것이었다. 또 호찌민이 남베트남에서 했던 방식처럼 남한에 거점을 구축하려는 계산도 깔렸다.

그렇지만 북한의 대남 도발은 남한 정부의 대북 불신감을 키웠다. 또 더욱 강화된 북미의 적대관계는 냉전의 마지막 잔재가 한반도에 지금까지 남도록 했다. 과거 북한이 통일 전략을 차용하려 했던 베트남은 이미 오래 전에 미국과의 과거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지금은 신흥시장으로 우뚝 섰다.

미국은 자국에 큰 상처를 남긴 베트남과도 손을 잡았다. 그래서 북미가 서로에게 직접적으로 총부리를 겨눴던 베트남에서 만나 새로운 시대 설계를 모색해보는 것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 대동강변에 반미 교육을 위해 전시돼 있는 푸에블로호 반환도 2차 베트남 정상회담의 의미를 더욱 살리는 조치로 여겨진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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