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명 넘는 사상자 낸 백마고지서 첫 삽… 분단극복 상징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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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DMZ 공동 유해발굴]다음주 장성급 회담서 최종확정


남한과 북한이 비무장지대(DMZ) 내 공동 유해 발굴의 첫 시범지역으로 백마고지(해발 395m)가 있는 강원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 일대를 사실상 낙점한 것은 역사·외교적 요소 등 다목적 포석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선 6·25전쟁 당시 최대 격전으로 꼽히는 ‘백마고지 전투(1952년 10월 6∼15일)’가 벌어졌다. 당초 백마고지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무명(無名)고지에 불과했다. 하지만 전쟁이 터지자 김화∼철원∼평강을 잇는 ‘철의 삼각지’의 교통 요충지로 부상해 서울로 통하는 유엔군의 보급로 확보를 위해 아군이 반드시 사수해야 할 지역이 됐다. 중공군도 철원평야를 점령하고 국군·유엔군의 핵심 보급로를 끊어 놓기 위해 군단급 병력을 투입해 고지 확보에 사력을 다했다.

당시 국군 9사단(지원부대 포함 2만여 명)은 백마고지를 차지하려는 중공군 제38군 3개 사단(4만4000여 명)의 집요한 공세에 맞서 열흘간 12차례 걸쳐 피비린내 나는 공방전을 치렀다. 양측이 전투기간에 고지에 쏟아부은 포탄만 27만5000여 발에 달했다. ‘백마(白馬)고지’라는 이름도 전투가 끝난 뒤 포격으로 허옇게 드러난 처참한 산의 형상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포격전과 백병전 등 대혈전이 계속되면서 백마고지의 주인이 7차례나 바뀐 끝에 국군은 중공군을 격퇴하고 고지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국군(3400여 명)과 중공군(1만여 명)을 합쳐 1만34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공식 집계되지 않은 사상자, 실종자를 포함하면 인명 피해는 2만 명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대마리 일대의 DMZ에는 최소 수천 명의 국군과 중공군 유해가 잠들어 있을 것으로 군은 보고 있다.

정부 소식통은 “6·25전쟁 때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에서 남북이 공동으로 유해 발굴의 첫 삽을 뜨게 되면 분단 극복과 화해의 상징적 의미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남북이 중공군 유해를 함께 발굴해 중국 정부에 송환함으로써 향후 비핵화 협의와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 과정에서 중국 당국의 적극적 이해와 협조를 견인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남북이 시범지역 선정 등 공동 유해 발굴에 합의해도 당장 착수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DMZ 내 매설된 지뢰를 제거하는 작업부터 선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백마고지 등 대마리 일대의 DMZ 안에 매설된 지뢰를 모두 없애려면 최장 수개월이 걸릴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사실상 ‘지뢰밭’이어서 이를 완벽하게 제거하는 작업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 군은 내년도 국방예산에 DMZ 유해 공동 발굴을 위한 지뢰 및 수목 제거 장비 도입, 발굴 인력 증원을 위해 172억 원을 편성했다.

한편 남북은 DMZ 내 감시초소(GP)의 시범 철수 방식을 두고 ‘일대일 맞철수’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예상된다. 군사분계선(MDL) 기준 1km 이내의 양측 GP 8∼10개를 선정해 일대일 방식으로 철수한 뒤 상호 검증 과정 등을 거쳐 추가 철수 여부를 추진하는 방향으로 협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국회에서 “(GP 시범 철수는) ‘일대일 맞철수’가 아닌 ‘구역별 철수’를 (북한에) 제의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군 안팎에선 북한 GP(160여 개)가 남측 GP(80여 개)보다 훨씬 많은 만큼 ‘구역별 철수’를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북한이 이를 거부해 남북이 ‘일대일 맞철수’에 합의할 경우 최전방 지역의 대비태세 공백 논란이 빚어질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백마고지#남북#유해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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