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국모 수준으로 안치해 달라” 모스크바 성혜림 묘에 가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7일 15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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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찾아간 러시아 모스크바 시 서남쪽 ‘트로예쿠롭스코예’ 국립공동묘지에 있는 북한 김정남의 생모 성혜림의 묘. 묘지 13구역에 위치한 묘의 봉분에는 붉은 색 조화(造花)가 꽂혀 있어 묘비 앞에 누군가가 오래 전 놓아 둔 바짝 마른 야생화 한 웅큼과 대조를 이뤘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복 형이자 ‘비운의 황태자’ 김정남이 지난해 2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독살당한 뒤 성혜림의 묘도 이장되거나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소문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김정남 사망 1년 여가 지났지만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주변 대부분의 묘와 달리 묘비가 묘지 진입로 반대쪽을 바라보게 한 점이 특징이었다. 따라서 입구 쪽에서 찾아 갈 때 묘비 뒤에 새긴 ‘묘주 김정남’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묘비 앞에는 한글로만 ‘성혜림의 묘’라고 쓰여 있고 출생과 사망 날짜(1937.1.24~2002.5.18)를 적었다.

정문 관리실 관계자에게 성혜림 묘 위치를 물었으나 그가 누구인지도 알지 못했다. 과거 김정남은 관리실에 들러 달러를 쥐여주며 묘를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했다는 말도 전하지만 지금은 잊혀져 가는 인물이 됐다는 느낌이었다.

모스크바 시 중심에서 서남쪽으로 30분 가량의 외곽에 위치한 이곳은 옛 소련과 러시아의 고위 정치인, 고급 장성, 유명 작가와 배우 등이 주로 묻힌 곳으로 원칙적으로는 외국인은 매장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성혜림이 사망한 뒤 북한 당국이 “시신을 본국으로 송환할 수 없으니 북한 국모(國母) 수준으로 안치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스크바의 북한 공관에서 묘지를 찾아 관리를 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언제부턴가 방치되고 있다는 관측도 많다. 묘비는 모친 사망후 3년 뒤 김정남이 직접 찾아와 세웠으며 김정남이 마지막으로 묘를 찾은 것은 2009년 10월로 알려졌다. 김정남이 사망한 뒤에는 먼 이국 땅에서 더욱 쓸쓸한 처지가 됐다고 현지의 한 소식통은 말했다.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서울 풍문여중을 다니다 한국 전쟁 때 어머니를 따라 북으로 간 성혜림은 평양예술학교를 졸업하고 영화배우가 됐다. 성혜림은 결혼해 딸까지 낳았으나 김정일의 눈에 들어 남편과 이혼하고 1969년부터 동거했다. 1971년 김정남을 낳았으나 김정일이 아버지 김일성의 뜻에 따라 김영숙과 결혼하면서 모스크바로 ‘망명’을 떠났고 심장병 등을 앓다 2002년 2월 유선암으로 숨졌다.

모스크바=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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