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지대 머물다 막판 세몰이, 반기문측 머릿속 ‘아이젠하워 모델’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9일 03시 00분


코멘트

[新4당체제]반기문, 대선 독자세력화 모색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구상하는 향후 대선 행보의 일단이 최근 ‘첫 정치 행보’를 통해 어느 정도 윤곽을 드러냈다. 반 총장은 22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에서 새누리당 충북 지역 출신 경대수 박덕흠 이종배 의원을 만났다. 이들은 반 총장을 만나기 위해 뉴욕을 방문했다. 반 총장은 최근 들어 부쩍 국내외 여러 정치권 인사들과도 직간접적으로 소통 채널을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반 총장이 독자 세력화를 위해 첫발을 내디뎠다는 관측이 나온다. 반 총장은 내년 1월 15일을 전후해 귀국한다.
○ ‘반기문 독자 세력화’ 시나리오

 
당시 반 총장과 의원들은 국내 정치 상황을 두고 여러 의견을 나눴다고 한다. 경 의원은 28일 “반 총장에게 대선 도전 의사를 물어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반 총장이 국내 정치와 관련해) 많은 얘기를 했다”고 전했다. 그는 “새누리당에 남아 있는 의원들이나 새누리당을 떠난 비주류(개혁보수신당)는 물론이고 심지어 다른 당에서도 (반 총장과) 함께하기를 원하고 있다”며 “어떤 선택을 할지는 귀국 이후 결정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건의했다고 한다. 또 “총장님이 가는 방향으로 우리도 정치 행보를 함께하겠다고 하니 (반 총장이) ‘고맙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들의 1차 구상은 반 총장 귀국 이후 새누리당 충청 출신 의원들과 중도 성향 의원들 중심으로 어느 정도 세(勢)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어 보수신당과의 재결합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반 총장을 중심으로 보수 진영이 새롭게 ‘헤쳐 모여’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충청권이 가장 먼저 결합하는 데 대해 반 총장 측에선 부정적 시각이 적지 않다. 반 총장이 ‘글로벌 리더’에서 ‘충청권 지역주자’로 평가절하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반 총장 측 한 인사는 “반 총장이 귀국하면 외교관 출신과 충청 출신은 뒤로 빠져야 한다”며 “이 두 가지 프레임에 갇히면 반 총장의 행보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때문에 반 총장이 보수 진영 재편이 아닌 ‘보수-중도 통합’ 행보에 무게를 둘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도로 새누리당 대선후보’란 야권의 비판을 차단하기 위해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전 대표나 민주당을 탈당한 손학규 전 대표 등과 ‘1차 연대’를 모색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 연결고리는 개헌이다. 반 총장은 새누리당 의원들을 만나 “국민이 원한다면 개헌을 안 할 수 없다. (총의가 모아지면) 대통령의 임기도 거기에 맞춰야 한다”고 했다. 대표적 개헌론자이자 대통령 임기 단축까지 주장하는 김 전 대표나 손 전 대표와 공통분모를 형성한 셈이다. 보수신당 김무성 의원 진영도 ‘개헌연대’에 동참할 가능성이 있다.
○ 또다시 등장한 ‘아이젠하워 모델’

 반 총장 측에선 ‘아이젠하워 모델’을 언급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미국의 전쟁 영웅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1952년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과 민주당 양측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하지만 줄곧 중립지대에 머물다가 선거 막판에 공화당 경선에 뛰어들어 대권을 거머쥐었다. 반 총장도 중립지대에서 몸집을 키운 뒤 기존 정당의 조직이나 전통적 지지층을 끌어안겠다는 얘기다.

 아이젠하워 모델은 2012년 대선 당시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추구한 모델이기도 하다. 하지만 당시 안 전 대표는 기성 정당의 높은 벽을 넘지 못했다. 반 총장 역시 보수-중도 통합을 위한 독자 세력화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무엇보다 내년 상반기 조기 대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기존 정치권을 새롭게 재편하기에는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 정치권에선 반 총장의 정치적 리더십이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단기간에 보수-중도 세력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도 적지 않다. 반 총장을 정무적으로 뒷받침할 국내 세력이 취약한 점도 ‘반기문발 정계개편’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으로 꼽힌다.

 아이젠하워 모델은 전국적으로 아이젠하워 추대를 위한 자발적인 시민 조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현재 반 총장을 지지하는 시민 조직도 곳곳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이에 반 총장의 측근인 김숙 전 주유엔대사는 이날 기자들을 만나 “(반 총장이)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문제는 이들 조직을 교통정리하고 컨트롤할 수 있느냐다. 오히려 내부 혼선과 갈등만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 검증 공세부터 통과해야

 반 총장이 자기 주도로 정치권 새판 짜기에 나설 수 있느냐는 1차적으로 귀국 직후 거세질 야권의 ‘네거티브 공세’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달렸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반 총장은 최근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23만 달러(약 2억7000만 원)를 받았다고 보도한 시사저널에 ‘공식 사과와 기사 취소’를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김 전 대사는 “해명할 것은 적극 해명하겠지만 음해에 대한 책임은 확실히 묻겠다”고 했다. 또 “10년간 국내에서 공백이 있기 때문에 국민 여러분이 궁금해할 사항이 여러 가지 있을 것”이라며 “적극적으로 검증을 받을 용의가 있고, 준비해 놓고 있다”고 밝혔다.

이재명 egija@donga.com·송찬욱 기자 /뉴욕=부형권 특파원
#반기문#독자세력#아이젠하워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