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史론 1919년, 국가史론 1948년 건국… 옳고그름 없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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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역사교과서 ‘1948년 대한민국 수립’ 표현 놓고 학술대회서 공방

 “1919년 건국을 주장하시는 분들은 가슴으로, 1948년 건국을 주장하시는 분들은 머리로 사는 분들입니다. 어느 쪽이 옳으냐 그르냐는 쉽게 말하기 어렵습니다.”

 12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별관 강당에서 열린 ‘1948년 8월 15일, 한국현대사 상의 의미와 시사점’ 학술대회에서 사회를 본 신복룡 건국대 명예교수(74)는 토론을 마치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국정 역사교과서에 사용된 ‘1948년 대한민국 수립’ 표현을 둘러싸고 날선 공방이 벌어졌지만 견해차만 확인했을 뿐 의견 접근은 이뤄지지 않았다. 신 교수는 3시간에 걸친 주제발표와 토론을 마치면서 접근 방식에 따라 생각이 다른 것이지 상대를 틀렸다고 몰아세워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 것이다.

 신 교수는 “이 문제는 민족사(民族史)로 볼 것인가, 국가사(國家史)로 볼 것인가에 따라 입장이 달라 타협이 안 될 수 있다”며 “하지만 다른 것을 틀리다고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민족사의 관점에서 보면 일제강점기 때도 한민족의 역사는 망하지 않고 이어져 왔지만 국가사의 관점에서는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것. 신 교수는 “참으로 치욕스럽고 가슴이 아파도 과거에 대한민국이 망한 적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보수와 진보 진영으로 나뉘어 ‘건국절 논란’을 벌이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양쪽에 쓴소리를 했다. 일부 보수 세력은 건국절 주장이 나오자 동시에 이승만 전 대통령을 국부로 만들려는 시도를 하면서 애국단체들의 분노를 키웠다는 것.

 반면 건국절을 말하면 친일을 옹호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진보 진영에 대해서도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도 ‘1948년 건국’ 관련 발언이 있었는데 이를 어떻게 볼 것인지, 그때는 왜 침묵했는지도 대답해야 한다”면서 “낙인을 찍으려면 책임 있는 논증을 해야 하기 때문에 쉽게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가 “하루 만에 합의를 억지로 찾을 수는 없었다”고 학술대회를 마무리했을 만큼 토론은 논쟁만 거듭한 채 끝났다.

 앞서 주제발표에서 한시준 단국대 명예교수는 “1948년 건국론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고 헌법에 위배되며, 상식적으로도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임시정부가 헌법을 통해 국민·주권·영토라는 국가 구성의 3요소를 갖췄음을 천명했고, 1948년 제헌국회에서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할 때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 재건했다고 밝힌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또 1948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도 임시정부에서 사용하던 ‘대한민국’ 연호를 이어서 사용했다는 점 등도 대한민국 건국이 1919년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김명섭 연세대 교수와 강규형 명지대 교수는 1919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됐다는 주장을 반박했다. 김 교수는 “1919년을 건국 기원으로 볼 경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며 “1919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된 것이라면 일제의 징세나 징병에 응했던 조선인들은 국가 반역의 죄를 범한 것이고, 1941년 발표된 임시정부의 건국강령은 왜 만들었는지 등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1949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가 ‘독립 1주년 기념식’을 열었으며, ‘대한민국 수립’ 표현도 과거 교과서에서 줄곧 사용하던 용어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1919년 탄생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1945년 해방, 그리고 1948년 대한민국 탄생은 결코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고 통합된 과정의 산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토론회장 앞에서는 광복회 등의 단체가 “‘대한민국 수립’ 기술은 명백한 역사 왜곡”이라며 항의 시위를 벌였다.

유덕영 기자 firedy@donga.com
#역사교과서#국정화#학술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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