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홍성규]헌법 부르짖는 촛불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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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규 채널A 사회부 차장
홍성규 채널A 사회부 차장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가 매일 광화문광장에 울려 퍼진다. 단 세 문장뿐인 노래 가사는 촛불 수가 5만 개, 10만 개, 100만 개, 160만 개로 늘어날수록 점점 더 긴 메아리를 남긴다. 빌딩 숲 유리벽에 부딪친 노래 소리들이 다시 광장으로 모였다가 북진한다.

 노래로 불려진 ‘헌법 1조’는 북악산 산자락 ‘파란 기와지붕 집’까지 파고 들어간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목청껏 부르는 모양새는 그 노랫말이 어떤 이의 가슴에 통찰의 비수가 되길 바라는 주문 같다.

 촛불집회의 단골 노래로 떠오른 ‘헌법 1조’는 단순한 노랫말이 계속 반복되는 구조다. 직접 광장에 나가지 않아도 들려오는 소리가 귀에 꽂히고 어느새 입으로는 노래 구절을 읊조리고 있게 된다.

 광장에 나왔든 나오지 않았든 국민이 헌법 노래를 읊조리는 것만큼이나 헌법에 대한 국민 관심도 커졌다. 헌법, 탄핵, 국민주권 등의 개념이 부각되면서 헌법 관련 서적 판매가 늘었다고 한다. 촛불집회로 이끈 ‘평화로운 분노’가 ‘공부하는 분노’로 이어졌다는 분석에 공감이 가는 대목이다.

 사실 ‘헌법(constitution)’의 개념은 유럽에서부터 만들어졌다. 그 어원으로 꼽히는 라틴어 ‘constituere’는 실체가 불명확한 상태에서 점점 형태를 갖춰 간다는 뜻이다. 여기에 국가를 세운다는 개념을 담으며 ‘헌법’이라는 용어와 개념이 완성됐다.

 우리가 쓰는 ‘헌법(憲法)’의 어원도 따로 있다. 노나라의 좌구명(左丘明)이 쓴 ‘국어(國語)’ 중 “선한 자는 상을 주고, 간악한 자는 벌을 주는 것이 나라의 헌법이다”라는 구절에서 헌법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서양의 헌법이 나라의 기틀을 세우는 데 초점이 맞춰진 것이라면, 동양의 헌법은 국가를 유지하는 기본 원칙을 정의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현재 국정 농단 사태를 동서양의 헌법 개념에 대입해 보면, 모두 ‘헌법 유린’이라는 매한가지 답이 나온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실체가 불명확한 최순실과 국정을 논의하고, 심지어 지시를 받은 듯한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실체가 명확한’ 국가 시스템을 모호하게 만든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수사의 유일한 주체인 검찰의 수사를 정치적 중립을 훼손한 것이라고 폄훼하고, 자신의 옆에서 ‘간악한 행동’을 일삼은 최순실을 방치한 책임을 대통령이 부정하는 실태는 간악한 자를 벌주지 말라고 하는 격이다. 헌법을 수호할 책무(헌법 제66조)를 진 대통령 스스로 헌법이 부여한 의무조차 내팽개친 셈이다.

 그런 대통령이 법 절차에 따라 물러나겠다는 뜻을 29일 대국민 담화에서 밝혔다. 현행 헌법에서 대통령의 퇴진을 염두에 두고 있는 규정은 헌법 65조 ‘탄핵’과 헌법 71조 ‘대통령의 궐위’뿐이다. 대통령이 스스로 궐위를 언급하지 않은 이상, 방법은 탄핵밖에 남지 않는다.

 29일 담화는 결국 ‘공은 정치권에 넘기고, 재임 기간은 계속 이어가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대통령도 꽤나 열심히 헌법 공부를 한 모양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민심은 담지 못한 것 같다.

 더구나 전날 “현재 급박하게 돌아가는 시국에 대한 수습 방안 마련”을 이유로 검찰이 제시한 대면조사 시한까지 넘긴 대통령이 내놓은 수습 방안치고는 너무 개인적인 방안이다.

 광화문광장은 또다시 촛불로 채워질 게 분명하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파란 기와지붕 집을 향해 부르는 노래 ‘헌법 1조’도 또 들려올 것이다.
 
홍성규 채널A 사회부 차장 hot@donga.com
#촛불집회#헌법#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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