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최진석]본질은 ‘박근혜 국정농단’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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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폐쇄적 ‘用人술’ 보면 역사를 후퇴시킬 우려
공적 시스템 사용하지 않고 최순실 사인에게 권위를 줬기에 이번 사태는 대통령의 국정농단
패거리 이익이나 눈치 보지 말고 역사발전의 탄력을 살려내야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건명원 원장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건명원 원장
 지금은 구속되어 있는 A 수석이 청와대로 입성하기 직전 내 친구 B 교수와 함께 만나 이런 말을 해 준 적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두 가지 장점이 있다. 하나는 여성이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산업화 주역의 딸이라는 점이다. 현대는 많은 점이 여성성의 특징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이 점을 잘 살리면 선진적 리더십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산업화 주역의 딸이기 때문에, 산업화의 그림자를 지우는 데 오히려 적임자일 수 있다. 산업화 시기에서 비롯되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모순과 갈등을 제거하고 우리가 나아갈 문을 새롭게 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동시에 또 단점이 된다. 구중궁궐에서만 살아온 여성이라면 사고나 관점이 상당히 제한적이고 폐쇄적일 것이다. 그 폐쇄적인 여성이 산업화 주역의 딸이라 그 시각에 갇혀, 민주화까지 달성한 우리의 역사를 오히려 산업화 시대로 후퇴시킬 가능성이 크다. 비서실장 등 사람을 쓰는 것을 보면 문을 닫아버릴 것이 더욱 분명해 보인다. 옛말에 “초목이 자라는 것을 보고 그 땅이 어떤 땅인지를 알고, 부리는 사람을 보면 지도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안다”고 하지 않았나.

 흔히들 말하는 ‘최순실 국정농단’이나 ‘최순실 게이트’로 대한민국호는 멈췄다. 개념을 분명히 하자. 이번 사태는 분명히 ‘박근혜 국정농단’이고 ‘박근혜 게이트’다. 대통령이 국정 농단의 뿌리인 이유는 국민이 마련해준 국가의 공적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고, 사적인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권위를 주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오히려 국가 시스템을 임의적으로 사용하게 하여, 국기(國紀)를 문란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개념이 달라지면 접근 방법이 달라지고, 접근 방법이 달라지면 해결의 범위나 내용이 달라진다.

 ‘최순실’을 개념의 중심에 놓으니, 관련자들의 처벌 조항들이 벌써부터 일반적인 권력형 비리 정도로 다루어질 강제 모금이나 뇌물, 이권 개입, 직권 남용, 공무상 비밀누설 등으로 정해져 가고 있다. 이렇게 되면 국정 농단의 뿌리인 대통령은 정치적이나 도덕적인 책임 정도만 지고, 법적인 책임은 최순실이나 A 수석 등이 대충 지고 사태가 마무리될 공산이 크다. 이렇게 돼서는 안 되는 일이다.

 ‘박근혜 게이트’의 문제는 몇 가지 권력형 비리를 지시하거나 방조한 데에 그치지 않는다. 국가의 기강(紀綱)을 잡고 번영을 촉진해야 하는 책임을 가진 통치자가 오히려 그것을 무너뜨리고 역사를 후퇴시킨 점이 진짜 문제다. 건국-산업화-민주화라는 어젠다를 직선적으로 완수한 탄력으로 바로 선진화라는 벽을 넘는 데에 몰두해야 할 힘을 소멸시키고 역사를 산업화 단계 혹은 그보다 훨씬 이전으로 다시 퇴행시켜 버렸다. 가난한 집 쪽박까지 깨버린 형국이다.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세상에는 문제없는 사람도 없고, 문제없는 국가도 없다. 문제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문제를 미래적으로 풀지 못하는 것이 진짜 문제다.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이번에 터진 사건을 국가 흥성의 계기로도 삼을 수 있겠지만, 지금은 문제 해결의 주체가 검사들과 정치인들이라는 점에서 전망을 밝게 가지기가 매우 어렵다. 정의로워 본 적이 없는 검사들이 이번에만 특별하게 정의로울 수 있을까? 그렇다고 타협이나 합의에 계속 미숙하였고 시대의식보다는 각자의 패거리 이익에만 빠져 있던 정치인들이 이번에만 그렇지 않을 수 있을까? 유독 이번에만 자신들의 셈법을 버리고 조국과 민족이 직면한 문제를 미래적으로 풀려고 헌신할까?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광화문은 촛불로 꽉 채워졌다. 희망은 여기에 있다. 패거리 이익이나 권력 눈치 보는 습관에 아직은 빠지지 않은 야생의 율동! 이 힘찬 율동이 정치인이나 검사들을 압박할 것이다. 그들은 이 압박을 기꺼이 받아들일 일이다. 이 기회에 낡고 지친 피를 젊고 새로운 피로 바꾸는 전면적인 도전을 감행하자. 국기 문란에 분노하면서도 그들의 구체적인 죄목만 따지기보다는 우리가 이룬 역사 발전의 탄력을 다시 살려내어 대한민국호를 앞으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는 시대의식에 집중하자. 퇴행적인 문제를 처리하다가 잘못하면 그 문제를 따라 함께 퇴행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건명원 원장
#박근혜#국정농단#최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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