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초 활발히 논의됐던 北 망명정부 구상… “황장엽 수반 계획… DJ정부가 막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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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엘리트들 ‘美 망명정부’ 추진]
황장엽과 함께 탈북한 김덕홍씨 “국정원이 암살위험 높다며 회유”
황장엽 “한국서 민주화 활동” 돌아서


 탈북자들이 주축이 된 망명정부 수립 방안은 한국에 망명한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사진)를 중심으로 2000년대 초반 활발하게 논의됐으며 2005년경 거의 성사 단계에 이르기도 했다. 하지만 망명정부의 수반으로 추대하려던 황 전 비서가 막판에 반대로 돌아섰다.

 황 전 비서와 함께 탈북한 김덕홍 전 노동당 자료실 부실장 등 복수의 인사에 따르면 황 전 비서는 2001년 7월 주한 미국대사관을 통해 미국으로 재망명한 뒤 북한 망명정부를 수립하고 자신이 수반이 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000년 첫 남북 정상회담 이후 대북 햇볕정책을 내세운 김대중 정부는 황 전 비서의 망명을 필사적으로 막았다. 김 전 부실장은 “당시 신건 국가정보원장이 미국에 가면 암살당할 수 있다고 협박했고, 나중에 황 전 비서에게 주체사상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연구소를 만들어주고 큰 자금도 주겠다고 회유했다”고 밝혔다. 황 전 비서는 그 후 망명정부 설립을 논의하기 위해 찾아온 주요 인사들에게 “한국을 북한 민주화의 기지로 만들어야지, 망명정부는 불필요하다”고 밝혔다.

 탈북자 단체장들을 중심으로 추진되는 망명정부엔 황 전 비서 같은 거물급 인사는 없다. 김 전 부실장도 이번 논의엔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망명정부 수립을 추진 중인 탈북 인사들은 ‘집단지도체제를 형성하고 미국에 망명정부를 대표해 실무를 처리하는 인물을 둔다’는 계획을 세웠다. 유명 인물 중심의 망명정부 대신 집단지도체제라는 상징성 자체를 부각시키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동의를 얻는 게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한미 양국 관계도 고려해야 할 한국 정부가 국내 탈북자들의 돌발적인 단체행동을 그대로 방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한국에 거주하는 탈북자는 법적으로 한국 국민이기 때문에 망명정부의 직책으로 활동하기엔 제약 조건도 많다. 한국 국적으로 미국에서 북한 망명정부를 운영하는 작업이 쉽지 않다는 뜻이다.

 또 북한과 지리적으로 먼 미국에 본거지를 두면 북한 내부 반체제 인사들과의 교감은 더 어려워질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한 탈북자 단체장은 “탈북자 단체들이 연합을 할 수만 있다면 굳이 망명정부가 아니라도 북한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북한#김정은#고위탈북#체제#황장엽#김덕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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