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휘둘려선 안돼… ‘넓은 세원-낮은 세율’ 원칙 세워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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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제개혁, 지금 안하면 못한다]<上> 꼼수 개편땐 ‘조세大計’ 휘청

18대 대선 당시 여야 간에 ‘복지경쟁’이 불붙자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0∼5세 무상보육, 기초노령연금 인상, 반값등록금 등의 공약을 쏟아냈다. 집권 5년간 135조 원의 재원이 필요한 대규모 사업들이었다. 박 후보의 재원 조달 마련 계획에 의구심이 제기됐지만 그는 일찌감치 ‘증세(增稅)는 없다’고 선언했다. 재정의 씀씀이를 줄이겠다는 점을 강조할 뿐 국민부담과 직결되는 세제개편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이는 박 후보가 집권한 뒤 추진한 각종 조세정책 개편 노력이 무산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 집권 후 부랴부랴 세제 개편

현 정부의 조세정책 기조는 ‘비과세 감면 정비’에 맞춰져 있다. 법인세는 물론 소득세 역시 세율은 건드리지 않고 각종 감면 제도를 정비해 세원을 넓힌다는 취지였다. 법인세의 비과세 감면 항목은 과거 정부에서 상당 부분 정비가 됐지만, 소득세의 경우 신용카드 소득공제처럼 일몰이 계속해서 연장돼 온 항목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정부는 대다수 국민이 비과세 감면 정비로 인한 세 부담 증가도 직접적 증세로 인식한다는 점을 간과했다. 그 결과 정부가 추진한 연말정산 제도 개선은 ‘꼼수 증세’ 논란에 휩싸여 여론의 거센 반발을 샀다. 또 현재 면세자가 근로소득자의 48.1%에 이를 정도로 확대됐지만 정부는 연말정산 파동에 놀란 나머지 손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비과세 감면 정비로 인해 세 부담이 증가할 수 있다는 점을 사전에 충분히 국민에게 알리지 못했다”며 “공감대를 충분히 형성하지 못한 채 세제개편을 밀어붙인 것이 패착의 원인이었다”고 설명했다.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집권 후 일방적으로 조세정책을 밀어붙였다가 실패한 사례는 비단 박근혜 정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감세(減稅) 정책’으로 대변되는 이명박 정부의 세제개편은 시작부터 ‘부자감세’란 비판에 직면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기인 2008년 9월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내리는 등 5년간 25조 원대의 세금 감면책을 발표했다. 세금 감면으로 기업의 투자를 독려해 일자리 창출과 경제성장을 유도하는 ‘낙수효과’를 염두에 둔 정책이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낙수효과가 미미한 수준에 그치면서 ‘제대로 검증도 없이 감세정책을 밀어붙였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노무현 정부는 집권 첫해인 2003년 10월 29일 부동산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세금 부담이 갑자기 과도하게 높아지다 보니 별 소득이 없는 연금생활자나 노령자는 살고 있는 집을 팔거나 빚을 내 세금을 내야 할 처지가 됐다. 여기에 강남 부유층에 물리는 ‘징벌적 조세’란 비판이 나오면서 종부세는 노무현 정부 내내 논란이 됐다. 결국 2008년 말 헌법재판소로부터 가구별 합산 부분이 위헌결정을 받고, 이명박 정부에서 세제 기준이 크게 완화되면서 종부세 파동은 일단락됐다.

김학수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조세지출 성과관리센터장은 “세금 문제는 민감한 만큼 오랜 기간 논의하고 공론화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며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시스템을 국회에만 맡길 건지 아니면 다른 방식을 취할 것인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집권 5년 세제운용 계획 밝혀야”

내년 대선을 앞두고 현재 각 정당과 유력 대선주자 측에선 국민적 시선을 휘어잡을 공약을 구상하느라 여념이 없다. 하지만 집권하면 나라살림을 어떻게 꾸려 나갈지에 대해 고민 중이란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돈 쓸 곳부터 생각하는 것’에서 ‘돈을 어떻게 마련할지’를 먼저 고민하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는다면 누가 집권하더라도 과거 정부의 실패를 그대로 답습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정치권이 ‘넓은 세원-낮은 세율’이라는 원칙을 가지고 세제 개편을 추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국민 모두가 조금씩이라도 세금 부담을 짊어지게 하는 이른바 국민개세주의(國民皆稅主義)에 따라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 등 3대 주요 세목의 개편을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납세의 의무를 진다’는 헌법 38조 정신과도 일치한다.

하지만 3대 주요 세목 중 현재 정치권에서 논쟁이 붙은 것은 법인세 정도다. 법인세의 경우 일반 국민과는 크게 관련이 없어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정치권 입장에서는 결코 ‘밑지는 장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 소득세와 법인세처럼 표심과 직결된 세목에 대해선 여야 모두 입을 다물고 있다. 그러다 보니 소득세의 연간 감면 규모는 20조 원에 육박하고 부가가치세는 40년째 성역으로 남아 있다. ‘누더기 세법’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매년 세법이 대거 개정되고 있지만 정부가 세법의 골간은 건드리지 못한 채 곁가지만 이리저리 바꾸는 이유다.

조세정책에 대한 공론화 시기는 빠를수록 좋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내년에 대선정국이 펼쳐지면 조세정책 대계를 그리는 일은 각종 달콤한 공약 탓에 뒷전으로 밀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은 “정치권이 ‘세금 청구서’를 선거 후 국민에게 강요할 것이 아니라 대선 전에 마련해 미리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세제개혁#정치#넓은 세원#낮은 세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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